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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의 문화에세이] 자본주의에서 무소유는 가능한가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0년 03월 26일
↑↑ 박정근 대진대 영문과 교수
ⓒ (주)포천신문사
‘무소유’의 산증인인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몸조차도 불로 사르고 연기와 함께 사라지셨다. 그의 존재 자체가 진정한 무(nothingness)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를 사라진 존재로 평가절하 할 수 없다.

몸은 사라졌다하더라도 무소유를 외치던 그의 정신은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중생들에게 평소에 가르치신 정신을 죽음의 순간까지도 지킴으로써 진정한 불도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주셨다.

살아있는 동안에 가족이나 친척들과 엄격한 거리를 지켜서 수도하는 사람의 현실개입을 철저히 차단하셨다. 비록 그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책을 쓰고 그것을 통해서 문명(文名)을 얻었다할지라도 그로부터 오는 인세수입은 불쌍한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베풀었다고 한다.

간혹 불교계를 소란스럽게 하는 유명 사찰의 주지임명 등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법정스님은 아예 주지 등의 이권에서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자신의 종교철학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를 가장 감명시키는 것은 스님으로서 신비감이나 종교성의 바로미터로 알려져 있는 장엄한 장례의식이나 사리 찾기 등의 의식을 일체 하지 않도록 유언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남길 수 있는 저서들의 출판을 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하니 종교인으로서 언행일치를 최대로 지켰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법정스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지킬 수 없는 덕목인 것인가. 세상의 인연으로 겹겹이 싸여서 단 하루도 걱정근심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없는 범인들에게는 ‘무소유’의 덕목은 지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존재 근거가 물질적 기준에 의해서 정해지는 요즘 세상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 같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이미 자신이 의미하는 ‘무소유’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모델로 보여주었다.

자본주의는 각자의 능력을 이용하여 경쟁적으로 돈을 벌어 삶을 영위한다. 문제는 각자의 삶을 유지하고 남은 물질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속물적 자본주의는 자기가 쓰고 남은 물질을 한없이 쌓아놓고 오직 자신의 호위호식에 매달리는 배부른 돼지들의 삶의 형태이다. 먹어도 먹어도 만족하지 않아 배가 터질 때까지 자기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추한 인간들의 속성이다.

법정스님이 책을 펴내서 출판사를 통해 인세를 받은 것은 자본주의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을 위해서 물질을 쌓아놓지 않았다. 또한 그를 위해서 저축을 하지도 않았다. 그가 생산한 자본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서 쾌척하신 것이다. 그 행위는 골방에서 외부와 단절한 채 수도에 정진하여 높은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못지않게 사랑의 실천을 위한 물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왜곡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병적 증상들을 정화시켜주는 기독교정신이 있기에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다. 카네기나 빌 게이츠 같은 기부가들이 천문학적 자산을 사회 환원이나 아프리카 기아퇴치 등의 운동에 엄청난 기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라는 혹평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번 아이티, 칠레 지진사태에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부나 자선으로 인류애를 실천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 그들의 자선이나 기부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초종교적 조화가 법정 스님으로 하여금 김수환 추기경이나 이해인 수녀와의 돈독한 인간적 유대를 가지게 했던 모양이다. 우리 범인들이 출가하여 스스로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수도승들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속인으로 살아가면서 수도승을 모방한다면 그 것 또한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을 남에게 의존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생산이 없는 무소유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수도승의 무소유란 속인들에게 끝없는 욕망에 대한 절제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욕망을 절제할수록 없는 자들을 위해서 자선하고 기부할 물질을 마련할 수 있다. 한 끼의 빵이 없는 자들에게 작은 음식의 자선은 하늘의 은총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무소유란 수도하는 사람의 청빈이나 결벽증의 철학이 아니라 나눔의 실천철학이 되어야 비로소 빛이 날 수 있다.

테라사 수녀가 존경받았던 것은 단지 그녀가 순결한 영혼을 소유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속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자선을 유도하여 나눔의 기회를 가지게 하고 영적인 구원을 얻을 수 잇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의 가르침을 남기고 가셨지만 한국의 조계종은 봉은사를 두고 정치와 불교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불교계 안에서도 법정스님의 진정한 뜻을 모르는 자들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詩=박정근] 무소유

불타는 몸이여
연기되어 피어오르는 당신은
세상에 먼지로 남아있는 속인들에게
마지막 남기고 가는 쓰라린 눈물인가

꽃이여
가볍게 날갯짓하며 다가온 나비와 벌에게
달콤한 젖무덤을 내어주어
사랑을 베풀라
네가 가진 것 비어질수록
세상이 향기로워지고 달콤해지니
가슴을 물어뜯는 벌레들의 횡포야
어린아이의 어리광으로 받으라

벌과 나비여
꽃의 가슴을 물어서
짜낸 꿀과 향기를 듬푹 머금어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의 혀끝과 텅 빈 가슴에
아낌없이 남겨주어라
피땀으로 얻은 양식이련만
너의 생명의 숨결이 남아있는다면
네게 남겨 무엇 하리
그 향기 바람타고 하늘하늘
세상을 아름답게 하리니

법정이여
이제 불길이 치솟아 오르니
연기도 없이 사라지는 당신이여
무소유의 가르침일랑
꽃과 벌 나비에게 맡겨두고
미련 없이 하늘로 오르소서

박정근 / 대진대학교 교수, 윌더니스 주간, 시인 (jkparkdj@hanamil.net)
박정근 기자 / jkparkdj@hanmail.net입력 : 2010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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