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노인문맹퇴치 활동의 작은 봉사

박 동 규(전 영북종고 교장·영북노인대학 강사)

지난 한글날, 정부에서는 내년도부터 2년간 한글 미해득자(未解得者)인 국민의 5%에 해당하는 250만 명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과정의 한글 기초과정을 이수(履修)시킬 계획을 발표했는데 때늦은 감은 있지만 천만다행으로 국민교육을 맡았던 한 사람으로 충심(衷心)으로 환영해 마지않는다. 당국이 국민의 문맹자(文盲者)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지만 발표에 따르면 예상 외로 많다고 하는 사실과 그 중에서도 60~80대 노령층이 대다수이고 노령층 가운데도 할머니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문맹(文盲)은 우리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것으로 그 기준은 시기·수준·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한글을 읽고 쓸 수 없는 정도면 문맹이라고 하게 된다. 문맹률이 높으면 후진국가를 면치 못하므로 문맹률이 국가의 문화수준을 결정짓는 요건이 된다.
문맹자들은 한 생애(生涯)를 어둠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늦었지만 한글 미해득자들의 한 생애 삶의 고통(苦痛)을 십분 헤아려 시책을 강구하고 추진하겠다는 당국의 배려(配慮)에 대하여 문맹자 본인들은 물론이겠고 관심이 있는 국민이면 모두 환영해 마지않는다.
교직(敎職)재임 중에 학부모들 대다수가 중졸 이상의 학력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지역 주민 가운데 문맹자가 극히 적겠다고 추정했는데 막상 퇴임 후에 노인대학·경로당 등지에서 여러 노인들을 접하면서 예상외로 문맹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생을 통해 여건이 허용되는 한 단 몇 사람의 문맹자라도 문자를 해득(解得)할 수 있게 돕겠다는 생각으로 의욕적으로 문맹퇴치(文盲退治) 활동에 직접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맹자는 대부분 60대 후반서부터 80대 초반의 노인들로서 일제말기에 출생하여 일제 식민지하에 가정의 빈곤으로 학습이나 교육기회가 없거나 부모의 남녀차별 등으로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어 많지 않았는가 한다.
8·15 해방 후 문맹퇴치 운동이 일시적이고 산발적(散發的)으로 실시됐지만 절대다수(絶對多數)를 수용해서 교육할 수 없어 그대로 반세기가 넘게 정부나 교육당국이 관심 없이 방치(放置)했기 때문에 노령층의 문맹자가 많다는 사실과 저소득(底所得) 가정의 할머니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퇴임 후 지역에 문맹자가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면서 단 몇 사람이라도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 충동에서 최후의 봉사로 결심하고 지도계획을 수립하여 시장상가 2층 빈 가게에 학림한문학당(學林漢文學堂)을 개설하여 2개의 강의실에 좌석 32석을 마련하고 책상·의자·칠판·급수대·선풍기 등은 뜻있는 이웃의 도움으로 학습 여건을 마련하고, 관내 초·중·고 교장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학생들과 각 이장들에게 안내문을 보내어 희망자를 파악했지만 문맹자가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고 기피해서 성원되지 아니 했다. 그렇다고 중단할 수 없어 수명을 대상으로 바로 강의를 시작했더니 희망자가 늘어났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희망자가 점차 늘어나리라 기대해본다.
한글 미해득자를 위해서는 매주 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한글을 읽고 쓰는 공부를 하며, 한문반은 한자학습을 위한 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수·금요일에 오후7시부터 2시간 동안 기초한자를 지도하게 되었다.
한글반은 17명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교재(敎材)로 해서 자모음(字母音)을 익히고 읽기·쓰기를 주학습(主學習)으로 하여 6개월 지나면서 부지런히 공부한 9명의 학로(學老)는 단순한 문장은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이 되어 가르치는 훈장으로서 보람은 물론이고 만학(晩學)에서의 서로 만나서 배우는 학로들의 반가움과 즐거움은 그 어디에 비길 수 있겠는가.
대개의 학로들이 공부를 못하게 된 사유는 부모의 남녀차별과 가정의 빈곤 그리고 조혼(早婚)으로 인하여 학습기회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학습기회를 놓친 것이 60여년의 세월 속에서 눈 뜬 봉사로 살았다고 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막을 수 없고 살아오면서 배우지 못해 한 많은 삶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슬프게 한다.
이제 와서 부모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지금도 늦지 않고 이제서부터 배우겠다는 의욕에 차 나름대로 진지(眞摯)하게 학습하려는 평균연령이 72세나 되는 학로(學老)들에게 감복(感服)되어 열성을 다해서 가르치게 된다.
대개의 학로들은 혀가 이미 굳어가기만 하여 정확한 발음(發音)을 기대할 수 없고,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이 겨우 들을까 할 정도며, 떨리는 손으로 잡은 연필로 점(點)과 획(劃)을 찍고 긋기에 마음을 따라 주지 않아 훈장(訓長)이 접근해서 지도하기를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주저하며 얼굴과 공책을 가리는 모습은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천순(天純)하기만 하다.
지도내용은 교재(敎材)를 중심으로 읽기·쓰기학습을 주학습으로 하고, 99단 외우기, 간단한 가감산(加減算), 숫자읽기, 저금통장 숫자알기, 주소알고 쓰기, 노인건강 등의 내용을 곁들여서 다양(多樣)한 내용을 관심과 흥미중심(興味中心)으로 공부하게 된다.
국가는 평생교육(平生敎育)의 일환으로 노인들의 문맹퇴치 교육을 계획대로 기필코 추진해 250만 명이 우리의 한글을 모두 해득하여 광명을 찾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수준 높은 문화국민으로서 긍지(矜持)와 자부(自負)를 갖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