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들 주석이가 학교에서 보내온 통신문을 가지고 와서는 내 앞에 쑥 내밀었다.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얼른 봉투를 열어봤더니 졸업식을 한다는 안내문이었다. 그 안내문을 읽는 순간 내 머릿속에 주마등 같이 나의 초등학교시절이 아스라이 스크린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다녔던 학교도 포천 신북면 소재의 외북초등학교였다. 시골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모교였던 외북초는 나의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우리 다섯 남매가 모두 선후배 사이였으며, 우리집 뿐 아니라 다른 집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보통 2대, 3대 형제, 자매 모두 선후배가 되는 가정이 다반사였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초등학교시절이 제일 재미있었고, 그때 그 친구들이 지금도 제일 친하게 지내며, 만나면 언제나 반갑기만 하다.
‘무른산 오르내려 잔뼈가 굵고 하늘봉 우러보며 마음이 크네’ 애국조회 때마다 참 많이도 불렀던 교가였는데……. 초등학교 막 들어갔을 때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을 못하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아침 등교길에 노트 한 권을 사야겠기에 엄마에게 돈을 달라 했더니 돈이 없다하시며 닭장에서 계란 하나 꺼내가서 학교앞 명자네(현재 열린슈퍼)서 공책과 바꾸라고 하셨다. 어렸던 나는 과연 그게 가능할까 생각하며 누나 손에 계란하나를 들려 누나 뒤를 따라갔고, 누나는 명자네 가게에서 여지없이 공책과 계란 하나를 바꿔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게 바로 물물교환이 아닌가 싶고 그 때만해도 계란이 귀한 시절인 듯 싶다.
또한 미술시간에 준비물도 그랬다. 선생님께서 찰흙을 준비물로 가져오라 하시면 학교 파하는 대로 친구들과 삼삼오오 삽을 들고 동네 뒷동산의 황토를 파러 가던지 아니면 좀 더 욕심을 부려 질좋은 찰흙을 준비할라치면 이 동네 저 동네 수소문하여 원정까지 가서 어렵사리 찰흙을 구해오곤 했다. 그 때는 어린 나이에도 알아서 자급자족을 한 듯 싶다.
여름이면 체육시간이 제일 기다려졌다. 체육시간이면 여지없이 반 아이들 모두 인솔해서 가까운 외북천으로 물놀이를 갔다. 그때는 물이 참 깨끗해서 물고기도 많았고, 고기잡이도 많이 했었고, 박태환처럼 멋진 자유형보다는 어설픈 개헤엄이 더 익숙했으며, 송장구리 놀이로 물속에서 멀리가기, 또 물속에서 물구나무를 선다며 서로 자맥질을 하며 발을 뻗쳐 하늘로 향해 바둥거리다 푹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다 그것도 시들해지면 괜히 여자 아이들과 물싸움으로 시비를 걸다 선생님께 걸려 혼나길 여러번…….
그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을 맞는다. 방학이면 친구들과 수건하나씩 목에 걸고 텃밭에 나가 오이며 토마토를 점심대용으로 몇 개씩 따가지고 앞개울로 향한다. 몇 시간을 물놀이를 하다 지치면 가지고 놀던 오이며 토마토로 시장기를 달래고는 새파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하얀 자갈밭에 누워 저마다 배위에 돌을 올려 돌탑을 쌓으며 놀다가 몸의 온기가 돌아오면 그때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때 보면 아이들 거의가 얼굴이 아프리카 깜둥이같이 시커멓게 그을려 이빨은 유난히 더 희어보였고 그나마 그래도 군인가족 여자아이들은 그 뜨거운 여름방학을 보냈어도 여전히 깔끔한 옷차림에 뽀얀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뒤뜰에 큰 밤나무에서 알밤이 하나씩 둘씩 떨어지면 얼마 안 있어 가장 기다려지던 가을 대 운동회가 시작된다. 그때 체육복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가관이 아니다. 아래는 까만 나일론 천으로 만든 반바지에 상의는 할아버지들이 입는 하얀 사각런닝 가슴에 외북초등학교 로고가 크게 새겨진 옷을 입고, 청군 백군 나뉘어 줄을 맞춰 흙바닥에 털썩 앉아 응원을 하며 앞에서는 6학년 형이 힘에 붙일 정도로 큰 깃발을 휘두르며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이 터져라 외친다.
남자들은 기마전에 곤봉체조. 여자들은 부채춤에 마스게임.
무엇보다 점심시간이 제일 기다려졌다. 김밥에 칠성사이다 1병이면 남부러울 것이 없었으며 운동장 한 켠에는 장난감장수들이 진을 치고 개나리 나무로 물총이나 만들어 놀던 시골 촌놈들 눈들이 휘둥그레지게 유혹을 할 때 쯤 어느새 나는 쌍권총을 들고는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사정을 했었다. 장마다 꼴두기가 서는 일이 없듯이 그때마다 성공확률이 그다지 높진 않았지만 그날의 쌍권총은 성공한 듯 싶다.
그리고 보니 그때 그시절 친구들 하나 하나 생각이 난다. 옹징어포를 잘한 양영권, 고무줄 끊기대장 이규형, 늘 아버지 짐자전거를 타고 다닌 김철종, 체육시간 수류탄 던지기를 잘하던 호박 이종철, 수영을 잘해 저수지를 몇바퀴를 돈다는 빤스 정운철, 보리문댕이 이문규, 달리기 잘한 호떡 최호식, 지금도 영원한 반장 이용휘 , 말 잘했던 이신우, 공부면도 체육도 잘한 야무진 성명순, 노랑머리 임명주, 기름종개 윤종길, 재수가 있던 없던 이재수, 코흘리개 최남숙, 정신줄 살짝 놓은 김민자, 체육시간 달리기 덤앤더머 홍선기와 최병재, 이쁘고 야무진 이경숙, 육상선수 방희향…….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지금도 생각나는 그 때 그 시절 좋은 친구들이다.
선생님들도 한 분 한 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조용하고 이지적이며 우리를 화초처럼 다루시던 1학년때 심순자 선생님, 언제나 화장을 뽀사시 이쁘게 하셨던 멋쟁이 처녀였던 2학년때 정유희 선생님, 그 때 40대인 듯 좀 노련하고 약간 할아버지티가 났던 3학년 때 주봉년 선생님, 날카로운 눈매에 날렵하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잘못하면 여지없이 회초리를 드셨던 4학년때 김기창 선생님, 그리고 교사임용되서 막 새로 부임해오신 총각 선생님 5학년 때 이주석 선생님. 모두 모두 다 특색있고 좋은신 은사님들……. 세월은 흘렀어도 그 분들은 내 가슴에 지금도 아련히 남아있다.
우리 주석이는 6년이라는 세월동안 학교를 다녔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길다면 긴 세월이고 짧다면 짧은 세월인데 주석이가 내 나이쯤 되어 이 외북초등학교의 학창시절을 얼마나 또 어떻게 추억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처럼 좋은 추억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선생님은 많은데 스승이 없고 학생은 많은데 제자가 없다”라는 글을 얼마전 책에서 접했다. 전에도 또 앞으로도 우리 외북초등학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은 모두가 스승이시며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제자였으리라. 나의 선배들도, 나도, 주석이도, 주석이 후배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학생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학교 다녔을 때에는 학년마다 2반씩은 있었고 60명 이상은 다 되었는데 지금은 전교생이 40여명밖에 안된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이 좋은프로그램을 짜내 정부에서 재정지원을 받아 학교시설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이 좋은 학교 시설을 맘껏 이용하고 그 많은 혜택을 누릴 학생들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앞으로 좋은 학교로 입소문이 나고 돌아오는 농촌학교가 돼 월요일 조회시간에 운동장을 꽉 메우는 그런 학교가 되기를 기도하며, 내가 다녔던 학교 !!! 내아들이 다닌 학교!!! 내아들의 아들이 다닐 학교!!! 영원무궁한 ‘외북초등학교’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