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의 대경고 - 괴질

김 용 재(대진대 생명과학과 교수)

동의보감에 괴질이란 증상이 보통병과 다르다는 의미로서 육징, 주징 및 발가 등 26가지의 예를 들고 있다. 이들 중에는 실제로 있는 병도 있지만 대부분이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음식물을 주의하여 먹으라는 것을 강조한 내용들이다.
괴질의 원인은 모두 바이러스
괴질의 원인은 모두가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물이나 음식물 등에서 생존할 수 있는 세균과는 달리 반드시 동물 등 다른 생물의 세포 안에서만 살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괴질의 원인인 바이러스는 닭, 돼지 등의 가금류나 쥐, 원숭이 등의 야생생물을 숙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 바이러스는 자연숙주인 가금류나 야생 원숭이 등에서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바이러스는 숙주 특이성이 있으므로 종이 달라지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괴질로 알려진 모든 바이러스는 어떤 원인에 의해 돌연변이가 일어나 사람의 몸을 감염시키는 신종 바이러스로 출현하게 되며 특이적인 숙주 내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생육하던 바이러스는 치명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괴질은 보편적으로 민란과 대화재, 대수재 및 전쟁 등에 따른 기근으로 민심이 흉흉한 시기에 발생한 예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에 잘 알려진 괴질은 BC 1100년경 이집트와 16C아메리카 대륙 정벌에 한창이던 시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천연두, 1347년도에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 1821년 인도에서 발병한 콜레라,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독감, 1980년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1999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발병한 에볼라 바이러스 그리고 현재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고 있는 괴질들은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그 종류와 발생장소가 바뀌어가면서 발생하고 있으며 20C 후반부터 그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질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인류에게 가장 심각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괴질은 아마도 천연두일 것이다. 천연두는 바리올라 바이러스(Variola virus)의 감염에 의해 유발되는 것으로 전염성 및 치사율이 높은 급성 전염병으로서 약 5억명 정도가 이 질병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흑사병의 원인균인 예르시나 페스티스(Yersina pestis)는 쥐와 벼룩 등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시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중국에서 발생하여 인도, 이집트, 북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으로 전파되어 1937년에 유럽인구의 1/3인 2천만명이 희생되었다. 또한 최근의 질병 중에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에이즈는 아프리카 원숭이에게는 전혀 탈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사람에게 옮겨지면 치명적인 면역결핍증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번 괴질로 알려진 사스의 원인 병원균인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로 동물에게 가벼운 증상을 일으키나 우연히 변종이 생겨 사람에게 폐렴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여러 가지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으면 함께 자연계로 도태되어야 하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나 사스를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돼지나 조류를 숙주로 하여 서식하는데 중국 광둥성 일대에서는 닭, 오리, 돼지 등 가축을 집안에서 사육하고 있다. 사람을 포함한 바이러스의 숙주가 한데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바이러스가 번식할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변종을 만들어 사람의 몸에 침투하게 됨으로써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독성을 띄게 된다. 사스와 같이 사람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전 세계의 관광, 여행, 오락 산업 및 경제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각 종 분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인구의 증가, 산업화 및 도시화 등으로 심각한 환경 파괴를 자행해 왔다. 삼림의 파괴와 화석연료의 사용량 증가는 지구의 온난화를 유발하였고 엘니뇨 등 기상재해가 유발되었다.
지구의 온난화로 변종바이러스 창궐

지구의 온난화는 환경이 열악한 후진국에서 각종 바이러스성 질병들을 급속하게 증가시켰고 변종 바이러스의 대량 발생으로 새로운 질병이 창궐하게 된다. 경제의 성장에 따른 항생제의 남용은 각 종 질병을 유발시키는 바이러스나 세균 등의 내성을 증가시키며 맹독성 변종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항생제 남용 외에 높은 인구밀도, 육류소비 확대와 이에 따른 항생제 주입 가축의 증가, 해외 여행과 교역의 확대, 취약한 공중보건 시스템 등은 신종 전염성 질환 즉 괴질을 확산시키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인류 역사 중에 전쟁이나 환경 파괴에 따른 각종 재난들이 일어난 시기에 맹독성 바이러스에 의해 치명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이것은 인간 개인의 면역력이나 보건에 의해 치유되거나 예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바이러스가 왜 맹독화되고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매우 겸허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바이러스는 환경 파괴에 대한 대 재앙의 경고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