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대한 소고

▲김 성 진(대진대 법학과 교수·법무행정대학원장)

가정폭력은 가족 상호간의 의사소통과정에서 폭력을 통해 상대방을 지배·통제하려는 것이며, 이에는 신체적 폭력은 물론 폭언·협박·강제적 성행위·가학 등 온갖 행위가 포함된다.
특히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고의 지배 하에 있었던 우리나라에서는 가정폭력을 가정 내의 문제로 여기는 인식 때문에 오히려 가정 내의 폭력을 조장·방관한 측면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가정폭력이 가족해체로 연결

이러한 가정폭력의 유형은 가해자와 피해자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 남편과 부인 사이나 부모와 어린이 사이에 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이 중에서도 아내학대 및 폭력은 가족해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다른 구성원들에게 장기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가정폭력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내폭력은 대개 일회성 폭력으로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순환되어 나타나며, 지속적으로 거듭될수록 그 정도가 점차 심각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정폭력의 실태>
우리나라의 가정폭력에 대한 여러 조사연구의 결과를 살펴보면 40∼60%의 여성이 결혼생활을 통하여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경험하였으며 이는 미국의 16.1%, 재미교포 18.8%, 홍콩의 14.2% 보다 2∼3배 가까운 발생률이다. 아내가 처음으로 구타를 당하는 시기는 결혼 후 1년 이내가 약 60∼80%, 결혼 5년 이내는 92%로 대부분 결혼 초부터 시작되며 장기적·반복적으로 행해지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타유형이 다양하고 심각해진다. 대개 첫 구타시에는 절반 가량이 따귀를 맞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점차 그 정도가 심해져 목조르기, 흉기사용, 무차별구타 등으로 심각해져 갔다.
아내구타는 그 발생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점차 폭력의 성격이 흉포화되어 가며 강도가 세어지는 경향이 있다. 구타로 인한 중상해나 살인은 따로 집계되지 않았으나 매맞는 여성의 83%는 전치 3주 이상 진단의 상처를 입는 실태로 치명적인 상해와 위협을 가져올 만큼 그 정도가 심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아내구타 후에는 남편에 의해 강제적 성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14.7∼28.8%에 이르고 아내에 대한 폭력이 아내에 그치지 않고 자녀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며 동거가족이나 심지어 친정식구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경우도 65.9%에 이른다.
이러한 아내구타는 피해자에게 신체적 고통 이외에도 심리적·정서적 영향을 끼쳐 신체·정신상의 심각한 변화를 초래한다. 즉 피해자는 ‘매맞는 아내 증후군’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의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되며 구타가 반복되면 자존심의 상처가 깊어져 주체성의 상실·자아의 파괴에 이르기까지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대책>

이러한 가정폭력에 대처하고자 1998.7.1.부터 가정폭력특례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제도상·운영상의 실효성 문제에 있어서 몇가지 검토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우선 모든 구성원의 자세는 인간존중의식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 즉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폭력이 추방되고, 인간을 존중하는 가치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마누라와 명태는 두들겨야 부드러워진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리게 된다’는 등의 속어는 조속히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가부장적 사고관념이 불식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남성에 의한 가정폭력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므로 남성은 이제 전통적 우월 의식에서 벗어나 여성을 동반자로서의 인격체로 대해야 할 것이다.

필요적 체포제 도입 필요

다음으로 폭력현장에 임하는 경찰의 초동단계 자세야말로 가정폭력법의 실효성확보문제를 좌우한다. 가정폭력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에 출동하여 사태진행을 장악함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시키는 등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므로 가정폭력범죄자에 대한 즉각적 체포와 경찰서에의 강제적 인도를 가능케 할 수 있는 필요적 체포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경찰이 가정폭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가정폭력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담반의 구성, 여성경찰관의 적극활용, 경찰개입의 근거 및 절차를 규정하는 법률의 제정·개정, 가정폭력상황을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과 훈련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는 법정책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폭력법만으로는 모든 가정폭력이 자연적으로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와 함께 가정구성원의 폭력근절의지와 폭력 허용적 사회문화규범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고 아울러 가정폭력의 폐해에 대한 홍보·계몽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가정폭력 근절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인간이 존귀하며 가정이 사랑의 보금자리라는 인식 하에 건강한 가정을 육성하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