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명제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바친다. 반면에 죽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거나 아예 의식하지 않고 지내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라도 미화하거나 대단한 의미를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권력이나 사업으로 성공한 자들은 자신의 삶의 최고의 순간을 표현하여 후세에게 남기고자 한다. 옛날의 왕후장상들은 유명한 화가에게 의뢰하여 거대하고 화려한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또는 유명한 문필가로 하여금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가급적 긍정적인 부분을 잔뜩 과장하여 전기로 남기려 하였다.
사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추하고 연약한 시간을 그리거나 글로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을 생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가장 비극적인 운명이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실존의 순간이다. 아무리 용맹스러운 군인도 죽음을 앞두고는 살려달라고 외치거나 생에 대한 미련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종교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다른 내세관을 내세워 죽음에 대한 고통을 줄이고 생 저편에는 천국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민하는 햄릿형의 인간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범인들은 죽음의 명제 앞에서 어떤 실행을 못하고 주저하게 된다.
물론 이를 뛰어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대의를 위해서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지는 영웅들이다. 이순신장군은 국가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위기에 빠져있을 때 죽음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적을 물리치다 총탄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주문한다. 또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위해서 죽음을 불사한다. 우리는 그들을 비극적 영웅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우리 범인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정리해야 할까. 가족 중에 치명적인 병에 걸린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당혹한다. 어떤 때는 슬픔과 연민에 빠져서 허둥지둥하다 가족 간의 사랑을 충분히 나누어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족들은 환자에게 죽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은폐한 채 자기들끼리 쉬쉬하면서 죽어가는 환자에게 정작 해주고 싶은 말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결국 환자가 영면한 후에야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슬픔의 말들을 땅을 두드리며 쏟아낸다.
강진화라는 사진작가이자 시인은 필자에게 감동적인 죽음에 대한 책에 대해서 서평을 부탁한 바 있다. 그는 ‘어머니’라는 제목을 붙여서 장모님의 죽어가는 과정을 매우 차분하게 사실적으로 사진으로 찍고 시와 수필로 묘사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인간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까지도 죽음을 앞두고는 귀중한 순간일 수 있다는 인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시도이다. 사위가 장모의 대소변을 도와주는 순간도 역겹거나 수치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오히려 그런 존재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더 차원 높은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
강진화 작가는 치명적인 병을 얻어 병원에 150일동안 입원한 장모를 사진이라는 사실적인 예술을 통해서 차분하게 포착하고자 하였다. 죽음에 대해서 감상적인 몰입을 하는 것만이 자식으로서 효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죽음의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는 장모의 고통을 함께 공유하는 휴머니즘이 더 귀중하다고 본다. 환자의 긍정적인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은 환자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더 귀하게 여기는데서 기인한다.
환자는 시간이 갈수록 무력해지고 인간으로서 품위나 자존심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지워지는 것이 고통스러워 그 순간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강진화 작가는 오히려 장모의 모든 면을 수용하고 소화해내는 깊은 사랑을 자아낸다.
강진화 작가는 장모의 초라한 모습조차도 그 존재를 통해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음을 “당신이란 의미”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거기에 있슴으로/빛이 나고/거기에 있슴으로/쓸모가 있고/거기에 있슴으로/내가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고/거기에 있슴으로/사람으로 하여금 사랑 받는 법을 배우며/거기에 있슴으로/이렇게 멋진 삶으로 연출될 수 있었음을../초라해 보여도 당신이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난,/정말 쓰잘데기 없는 존재였을지 몰라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신세대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에 익숙하지 않다. 자식들을 하나만 낳아서 애지중지하며 키워놓으면 사랑받을 줄만 알고 주는 방법을 모른다. 사랑한다고 몰입했다가도 그 과정이 힘들어지면 쉽게 포기하고 만다. 진정한 사랑이란 죽음이란 실존까지도 그 고통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의 시점에 보면 극적인 사랑이나 우정보다 평범한 일상들이 더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되어야 한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해도 회피하지 말고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나가야 할 것이다.
박정근 / 대진대 영문과 교수, 윌더니스 주간, 시인 jkparkd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