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요즘, 우리는 교양이나 문화 등의 DVD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으며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오늘은 학교에서, 잘못 된 말인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심한 욕을 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했다. 한 구절의 말 중 약 80%의 욕을 섞어 말하는 청소년에게 리포터가
“왜 그렇게 욕을 하나요?” 라고 물으니 욕한 것이 부끄럽다거나 잘 못됐다는 표정도 없이 “모든 친구들이 욕을 하는데 나마 하지 않으면 모범생인척 한다고 왕따를 당하거나 나만 처지니까요.” 하고 말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욕을 해 대는 비디오 속의 청소년들을 보며 불현 듯 지난해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느 날 오후, 약국에 가서 약을 사게 됐다. 약사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약을 짓고 있는데 할아버지의 친구인 듯 한 분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러자 약사 할아버지께서 “그래, 선도는 잘 했나?” 하시자
“응...... 허, 참... 고등학생 이라는 녀석 너 댓 놈이 골목길에서 서성거리고 있기에 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라고 했더니 글쎄, 형님 술 좀 사먹게 이천 원만 주쇼. 하지 뭐야.” 하셨다.
약사 할아버지께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 하시자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줬지. 요즘 애들은 야단친다고 들을 애들이 아니야. 살살 달래야지. 이천 원 주고 조금만 먹고 빨리 들어가라고 했지. 에휴...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놈들이기에......” 하셨었다. 그 할아버지는 마을 곳곳의 골목길에 자리 잡고 놀고 있는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해 골목을 순찰하시는 자원 방범대 할아버지이신 것 같았다. 어른들이 청소년들 무서워서 제대로 된 훈계도 하지 못하시고 살살 달래야만 한다니,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 했었다.
오늘 욕에 대한 비디오를 보며내 마음속에 효행과 덕행으로의 온고지신 뜻이 더욱 새롭게 다가왔으며 오염된 자연환경의 정화와 더불어 우리의 인격까지도 새롭게 정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발등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더욱 높이 설 수 있고 뭐든지 남보다 잘 해야 한다는 경쟁심은 욕조차도 남보다 더 잘 해야 내가 멋져 보인다는 생각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오래 전, 초등학교 1,2 학년 한글공부에 열중할 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난 사자소학으로 받아쓰기를 했었다.
소학은 1187년 송나라의 유자징이 그의 스승인 주자의 지시에 따라 어린이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수신서라고 한다. 남송 사람인 주자는 우리나라의 고려 말기 정도에 생존했던 사람인데, 그 당시에도 어린 아이들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예의 없고 싸가지 없음을 걱정하다가 제자를 시켜 소학을 엮은 것인데 그 것을 우리나라로 들여와 다시 엮은 것이 사자소학이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예의 없어 보이기에는 한가지인 것 같지만 오늘 본 비디오 속의 욕설은 내가 보기에도 심한 것 같다.
“ 부생아신 하시고 모국오신이로다. 복이회아 하시고 유이포아 하시며 이의온아 하시고 이식포아 하시니 은고어천 하시고 덕후사지로다. 위인자자가 갈불위효리오.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네.
배로써 나를 품어 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시며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밥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시니 은혜의 높기가 하늘과 같고 덕은 두텁기가 땅과 같구나. 사람의 자식 된 자가 어찌 효도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큰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부모님을 걱정시키거나 욕되지 않게 하고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지켜야 할 행동들이 소학에 쭉- 나와 있었다. 소학을 공부하며 받아쓰기 할 때는 고리타분하다. 권위적이다. 하며 불평불만을 했었는데 오늘, 욕에 대한 비디오를 보며 느낀 점이 있다.
내가 욕을 하면 남이 나를 좋지 않게 보게 되고 그럼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니 불효이고, 욕하는 나를 키우신 부모님을 남들이 손가락질 할 것이니 부모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욕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가르치고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생각하게 한다면 욕은 저절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자기 할아버지와 같은 어른들에게 술값을 달라는 망발은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