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세종시의 본질은 어디가고 중구난방의 각론만 무성해서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여야의 정쟁으로 치닫더니 이제는 여당의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이 금지선을 한참 넘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치에는 항상 결론에 이르기 전에 거쳐야할 단계가 있다. 정치인들도 각자의 다른 정치관을 가질 수 있으므로 서로 의견을 조율하여 의사결정과정을 거친다. 최고의 권력자인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무시하면 독재자라는 비난을 면 할 수 없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의 핵심은 이 정치적인 단계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종시를 만든 이유는 수도권의 과밀 해소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 정권에서 정부와 의회의 모든 절차를 거쳐 의결을 하였거니와 이를 위해서 엄청난 재정을 들여서 땅을 사고 도시계획을 추진하느라 연기군 주민들은 고향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요즘 주민들이 눈물로 호소하는 것은 세종시라는 행정중심도시라는 국가적 명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운 고향을 내놓은 것이지 아무런 명분 없는 또 하나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국익을 운운하면서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하고 극히 즉흥적으로 만든 미봉책으로 충청인들을 회유하고 있다. 아이러닉한 것은 지난 대선 때 대부분의 여당 지도부가 세종시 원안에 찬성하였고, 이를 기초로 세종시법을 통과시켰다는 점이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대선과 각종 선거에 자신들의 입으로 공약한 내용을 마치 자신들과 아무 관계없이 이루진 것인 양 손사래를 치고 있는 여당 주류의 이중적 자세이다.
이것은 야당과 박근혜 전대표가 주장하는 정치인의 신뢰만이 아니라 역사의 시간을 되돌려서 원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가 심각하다. 마치 폭군들이 전대에 이루어진 사건을 뒤집어서 땅 속에 묻혀있는 시체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 꼴이다. MB 정부는 왜 국민들이 자신들의 큰 뜻을 몰라주고 야단이냐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물을 도로 담을 수 있다는 환상이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왜 그 내용물이 이미 국민들의 의식 속에 깊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행정부처가 서울이나 수도권에 남아있어야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하도록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수도권과 지방을 분열시키게 된다. 사실 세종시 수정안은 다른 지방도시에 추진 중인 혁신도시에 비해서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게 되면 지방과 지방간에도 이해관계로 첨예한 대립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국익이 될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지금 정부는 충청도민, 특히 연기군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서 정든 고향땅을 내놓았다. 도시계획이나 국토계획에 의해서 추억이 서려있는 곳을 떠나는 것은 서럽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향을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필자는 고향을 생각하면 그 때 뛰어놀았던 길들이 눈에 선하여 고향 길에 대한 그리움을 한편의 시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어릴 적 살던 시골 떠난 후/언뜻언뜻 떠오르는 길/학교에서 우리 동네로 가다가/바람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수수밭을 거쳐/메뚜기 날뛰던 논둑길/자전거 가끔 오갈 뿐/한적한 황토색 언덕으로 이어지고/자치기나 민둥산 오르내리며/전쟁놀이를 벌이다 시들해져/놀 거리 없어 따분했던 동무들/텅 빈 들녘에 서서/멍하니 황혼 바라보다/터덜터덜/집으로 기어들어오던 길”
고향의 이미지는 모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삶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고향을 국가적 대의를 위해서 내놓은 주민들에게 약속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정부는 계약 위반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에게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그것은 적반하장격이다.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약속을 지킴으로써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고향을 두고 국가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 고향의 상실감을 행복도시라는 행정중심도시가 고향에 세워진다는 꿈으로 보상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 꿈에 부풀었던 가슴이 퍼렇게 멍이 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여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국론을 분열시킨 점에 대해서 깊숙이 사과를 해야 한다.
세종시 원안에 대해서 계획단계에서 수정을 주장했다면 그 것은 정치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의결절차라는 정상 분만을 마친 아이를 사생아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낳은 자식을 부인하는 부도덕한 행위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이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으며, 현 시점에서 수정안 추진은 버스가 지난 후에 손을 드는 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