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예술에 대한 개념이 고전 예술에서 대중예술로 확장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전 작품에서 금기시되던 것들이 개방적인 대중 예술적 관점에서 과감하게 시도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인 가치관이 강해서 예술에 대해 매우 경직된 자세를 취해왔다. 소설, 영화, 연극 등에서 성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작가들은 사회적인 분위기를 살얼음판을 걷듯 살피면서 창작을 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검열기관은 작가의 상상력에 메스를 가하듯 시시콜콜 개입을 하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었다. 도발적인 작가인 마광수 교수는 『가자 장미여관으로』에서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법적 징계를 받았을 뿐 아니라 교수직에서 해직되는 수모를 당해야만 하였다. 작가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야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면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자칫 도덕적 해이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상상력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고 그 심리적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쭉정이 같은 작품을 낳게 된다.
철학가인 플라톤은 『공화국』이란 그의 저서에서 시인을 사회에서 축출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시인은 상상력과 영감을 통해서 만든 작품으로 논리적 사고훈련을 받아야할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그는 문학을 평가함에 있어서 사회에 대한 도덕적 유익성의 각도에서만 보려고 하였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진리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미학적 면에서 바라보아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으니 플라톤의 시각이야말로 매우 편협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독재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예술에 대한 사회적 공익성을 내세워 에로티시즘이나 사회적 비판을 성적 선정성이나 정치적 전복으로 치부하여 핍박하곤 하였다. 하지만 예술도 사회의 산물의 일부분이니 상호간의 적절한 균형과 소통은 필요불가결하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요즘 극장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나인』은 예술과 도덕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와 뮤지컬 요소를 재미있게 혼합하여 만들었으며 사랑과 섹스, 그리고 도덕의 갈등을 다루고 있어 『시카고』를 제작하였던 롭 마샬 감독의 세 번째 작품으로 상영 초기부터 갈채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천재 감독 귀도가 7명의 미녀들에게 선정적인 유혹을 받는 것을 다룬다.
이태리인의 국보급 감독 귀도는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어 온 국민들과 언론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도한 일에 극도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그가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영화를 만들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남편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아내 루이사는 그의 외도를 묵인하다가 내연녀인 칼라와의 애정관계에 대한 귀도의 끝없는 거짓말에 신물이 나있다.
새로운 영화 “이탈리아”의 여주인공에 발탁한 최고의 스타 클라우디아도 귀도가 자신에게 애정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영화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심신이 기진맥진한 귀도에게는 심리적인 감옥에 갇혀있어 탈출구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귀도는 정신적 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영화 “이탈리아”에 대한 인터뷰를 마친 후 유부녀인 내연녀 칼라를 은밀하게 불러들인다. 캐스팅하는 자리에 아내 루이자가 참석해줄 것을 부탁한 곳에 밀회장소에 숨어 있어야할 칼라가 갑자기 나타난다.
그녀를 알아본 루이자는 남편의 위선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결별을 선언한다. 이제 귀도는 예술이란 명분으로 더 이상 도덕적 의무를 미룰 수 없다. 칼라나 여인들로부터 영감을 보급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작자와 조력자들에게 사과하고 영화판을 떠나고 만다. 아내와 별거상태에서 정처 없이 2년 정도의 방황을 마무리할 즈음 항상 의상을 돌보아주던 올드 패션 디자이너가 귀도에게 나타난다.
그녀는 그에게 다시 영화를 시작하라고 충고하는데 그 순간 귀도는 새로운 사랑의 비전을 가질 수 있음을 감지한다. 이제는 더 이상 영화에 대한 영감을 명분으로 끝없는 섹스에 대한 추구가 아닌 진실한 사랑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솟아나기 시작한다. 아내를 떠남으로 해서 아내에 대한 참사랑을 깨닫는 역설적 영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를 다시 촬영하기 시작하는 순간 루이자도 어느새 돌아와 진지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 귀도를 지켜보며 미소를 짓는다.
다소 멜로드라마적 귀결이지만 예술과 도덕 간의 긴장과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자기 탐익에 몰두하는 모더니스트들에게 끝없는 자유방종은 예술적 쾌락이면서도 자기 파괴적 비극일 수 있다. “예술이냐 도덕이냐” 이러한 딜레마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보다는 균형 있는 공존이 해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