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 전쟁이 끝난 지 60여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남북의 이념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남북 간에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란 틀이지만, 남한 내부갈등은 극우와 진보로 대립하는 이분법이 우리의 사고를 경직시키고 있다. 현 정권을 세운 뉴라이트 세력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매도하면서 그 정권에 몸담았던 자들에게 빨간 색을 칠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고방식과 이념 그리고 출신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적으로 보고 우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 유치하기 짝이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박연차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피의사실을 검찰수사과정에서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에게 씻지 못할 불명예를 둘러씌운 나머지 자살의 길로 몰아세우고 말았다.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으로 절망의 눈물을 흘린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 대통령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청순한 이미지의 한명숙 전총리가 뇌물을 받았다는 피의사실을 조선일보를 필두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
검찰은 자신들이 흘리지 않았는데 언론이 스스로 입수해서 보도했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대통령 사건으로 인해 임채진 검찰총장이 옷을 벗고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던 검찰은 아무래도 심각한 건망증에 걸린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무모한 자해행위를 일삼을 리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유형의 실수를 반복해서 한다면 그들의 이성적 능력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로망스극에 해당하는 『태풍』에는 동생에게 배반을 당하고 밀라노 왕국의 공작에서 폐위되어 섬에 유배되어있는 프로스페로라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학문에 빠져서 동생에게 정권을 맡겼다가 그의 반역행위에 의해서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일엽편주를 타고 내몰린 그가 얼마나 복수심에 불탔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는 학문을 통해서 배운 마술을 이용하여 원주민 캘리반을 지배하고 정령 에어리얼을 마음대로 부린다.
그는 섬을 지나가는 정적 일행이 탄 배를 마술로 일으킨 태풍으로 난파시킨 후 하나씩 자신의 왕국인 섬으로 들어오게 한다. 이때부터 그가 보이는 행위는 관객이 예상하는 복수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사랑하는 딸 미란다와 정적 알론소의 아들 퍼디난드를 사랑하도록 유도하고 정적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만든다. 그는 미움으로 복수하기 보다는 화해로서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나가는 대의를 보여준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역사의 수치스러운 장미전쟁에 대해서 왕족끼리의 골육상쟁의 싸움에 대한 대안을 초자연적인 마술과 화해의 제의에서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발전이란 끝없는 투쟁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뒤따른다. 프랑스 대혁명, 소련의 볼쉐비키 혁명 등이나 히틀러 등의 파시즘은 역사발전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로 인해 단두대와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만약에 이십일 세기에 이런 혁명이 일어난다면 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도래할지 모른다. 셰익스피어가 『태풍』이라는 로망스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피해자든 가해자든 스스로 나서서 복수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복수의 악순환을 역사발전의 방식에서 삭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폭력보다는 사랑과 용서의 방식이 더욱 유효하다고 본다. 비록 현실에 맞지 않는 이상적인 방식 같지만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며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미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꼭 꿈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수많은 세월 자신을 감옥에 가두었던 백인정권을 용서하고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전두환 대통령에게 정치적 보복 대신에 청와대에 초청하여 예우함으로써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 않았던가.
화해와 용서는 지금의 약자보다는 강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가능 하다. 한명숙 전 총리가 비리를 저질렀다면 그것을 감싸자는 것이 아니다. 그 비리는 어차피 밝혀지게 되어있다. 문제는 그것을 접근하는 법의 원칙이나 과정이다. 검찰이 힘 있는 자편에 서서 비리가 밝혀지기도 전에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곽 사장의 불완전한 진술만으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뇌물수수범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이 법의 수장인 법무부 장관의 입장일 수는 없다. 아무리 심증이 가더라도 법적 증거가 완벽하지 않다면 담당검사로서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 전 총리는 검찰에게 전직 총리로 예우하겠다는 립서비스에 대해 ‘총리로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민’으로 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 전 총리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검찰이 전직총리를 그 정도로 다루는 것이 예우한 것이라면 일반 시민들의 인권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