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대장부는 평소에는 울어서는 안되며 꼭 세 번 운다는 옛 말이 있다. 나라를 잃었을 때, 부모를 잃었을 때, 뜻을 같이 하는 친구를 잃었을 때이다.(면암 최익현은 나라가 망할 무렵 도끼를 들고 통곡했던 인물이다.)
여기 내 고향 포천 가채리 711번지에서 태어나신 면암 최익현 선생은 1833년(순조 33년) 12월 5일 우리들의 고향 포천이 낳은 충신이며 의병 대장이었다. 벼슬길에서 물러나 유배지에서 보낸 부모, 형제, 친척, 자식들과의 서신은 면암의 인간미 어린 입김이 묻어 있어 우리를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한일 합방의 왜적의 괴수 이등박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면암 최익현과 같은 인물이 또 하나만 더 있었어도 우리 일본은 한일 합방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내 조국 한반도에는 당시만 해도 단 한분뿐인 최고로 기개 높은 충신이었다.
우리는 '면암의 충성의 길'을 수도없이 읽고 공부하고 본 받으려고 애를 써왔다. 이번에는 이 편지집을 읽고 면암의 인간적인 고뇌와 입김어린 체취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이 편지집은 가족 간의 왕래 편지여서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철저하게 지킨 상소문이나 상하가 분명한 서간문과는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면암의 인간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 '면암 최익현'에 이어 우리 한글로 번역된 편지집을 대하고 보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 다른 위인들의 사업회보다도 한발 앞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아 면암 최익현선생 숭모사업회 관계자들의 지혜로움에 고마운 인사를 드리는 분이 많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