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10-23 오전 10:54:1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특별기고

[특별기고=김현목3] 어머님 품같은 내 고향 내촌면


김현목 기자 / 65pine@hanmail.net입력 : 2009년 12월 18일
↑↑ 김현목 포천신문 시민기자단 명예고문
ⓒ (주)포천신문사

속칭 ‘독바위’로 별칭되는 주금산(해발 814m) 자락이 있는 포천시 내촌면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주금산은 일명 비단산으로도 불리며 주위에 서리산, 천마산, 축령산 등 꽤나 높이가 있고 풍광이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정상부근의 기암과 수려한 비금계곡이 어우러져 마치 비단결 같은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서북쪽 산자락에는 스키장으로 유명한 베어스타운이 있어 내촌면민들은 물론 포천시민과 수도권 시민들에게도 친숙하고 정감을 주는 산이다. 몇해 전 정상부근에 설치된 팔각정은 등산객들이 땀을 식히며 쉴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주금산은 광릉수목원 인근의 우거진 숲자락과 접해 있는 죽엽산(601m)과 함께 내촌면을 상징이자, 자랑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어머님 품처럼 넉넉한 주금산과 죽엽산 아래 분지처럼 자리잡고 있는 내촌면에 대한 애정은 필자뿐만 아니라 내촌면에 뿌리를 둔 많은 동향인들이 공감하는 바이겠지만 필자에게 있어서는 남다른 의미가 있고 더욱 정감이 간다. 고향 집 앞마당에서 멀리 보이던 주금산과 주엽산을 바라보며 유년시절 나는 미래를 꿈 꾸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단지 높은 산봉우리가 아닌 인생에 있어 내가 도전할 목표이자 ‘꿈’이었으며 ‘추억’이었다. 한편으로는 넘어야 할 거대한 ‘시련’이기도 했다.

필자는 유년시절은 물론 초․중․고, 심지어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내촌에서 통학을 했다. 지금은 교통여건 등으로 상상하기조차 어렵겠지만 대학졸업 직후인 1989년부터 약 1년간 직장이 있는 여의도 국회까지 출퇴근을 하기도 했다. 당시 젊은 패기와 열정 하나만 가지고 상봉버스터미널까지 직행버스와 시내버스, 지하철을 번갈아 고루 타면서 2시간 이상의 출퇴근 시간을 감내하며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돌이켜보면 그 먼 여정을 어찌 견뎌내었던 것인지 참으로 고달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출퇴근으로 지쳐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여유로워 늘 어머님 품과 같이 넉넉한 주금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고향마을이 좋았다. 내 고향 내촌면은 젊은날의 초상처럼 내 삶에 있어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필자는 대학시절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었다.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후 출소해 고향 내촌면에서 시름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 군사정권시절 구치소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만큼 참혹했다. 인권탄압이 극심했던 시절 옥살이는 마치 일제시대 고문당하던 시절과도 흡사했다. 출소 후 상처받은 심신을 달래려고 주금산을 오르고 또 오른 기억도 새삼 떠오른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오르던 주금산, 필자에게는 유년시절부터 ‘독바위’로 더 친숙하게 들리던 주금산 정상에서 당시 암울하던 시대적 아픔에 그저 괴로워해야만 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내 젊음 날은 주금산 정상에서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 상처받은 젊은이에게 주금산은 위로의 공간이자 휴식처였다. 힘들 때마다 오르던 주금산은 언제나 내게 조용한 위로를 보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답답함에 산 아래를 보며 고래소리 치를 때마다 메아리가 되어 고단하지만 견뎌내라고, 그리고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라고 주문했던 것 같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고향에서의 추억과 기억은 비록 1년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촌 양어장에서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시간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간들에게 감사한다. 지금이야 당시 대학생의 아르바이트처럼 의례적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필자에겐 절박한 생계형 취업이었다. 낚시터를 겸한 양어장에서 새벽마다 향어, 잉어, 송어에게 사료밥 주며 시름을 달래던 그 시절이 아련하다. 그 시절은 아마도 내 젊은 날에서 구치소 생활과 함께 가장 절망적인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힘들고 고단한 시절을 버텨낸 것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해 준 것 같다.

지금도 부모님과 동생들이 살고 있는 고향마을에 갈 때마다 주금산 자락이 있는 인근마을까지 산책을 하곤 한다. 옛 시절의 정감어린 풍경이 아직도 남아 있어 유년시절의 흔적들을 찾곤 한다. 고향마을을 찾을 때마다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을 여행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하지만 고향을 찾을 때마다 한 가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내촌면의 발전이 지나칠 만큼 더디다는 점이다. 지금도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고향마을을 대할 때마다 정겨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적인 낙후함이 느껴진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도 훨씬 이전 필자가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 시절과 비교하더라도 다소 인구밀도가 늘어나 공장시설과 도로 옆 낯선 상가 및 음식점들이 들어선 것 이외에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지금도 2층 이상의 높은 건물이 흔치 않을 만큼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을 유지하고 있는 고향마을을 대할 때마다 정겨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필자가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 시절과 비교하더라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중고교 시절 광릉숲에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던 학교까지 먼지자국 날리던 비포장 길을 털털거리며 내달리던 학교버스를 타고 다니며 통학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가끔은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처럼 농부와 소달구지가 힘들어 하며 지나가던 모습도 아련하다. 거대한 아파트 숲보다는 더 정겹지만 수십 년 전의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한 고향마을의 미래는 부모님 세대가 아닌 우리세대의 몫으로 다가온다.

언젠가는 도회지 생활을 마치고 내고향 내촌면으로 돌아가 자연을 벗 삼아 고향발전을 위해 작은 밀알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다. 포천시 동쪽편에 우뚝 솟은 채 마치 어머님의 품속의 넉넉함과 여유를 찾게 해주는 주금산과 죽엽산은 언제 어딜 가도 가장 보고 싶고, 그리운 산자락이자 고향마을의 대표적인 풍광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주금산에게 감사하며 산자락이 시작되는 고향마을로 돌아갈 때까지 필자는 지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번잡한 도봉산이나 북한산이 줄 수 없는 새로운 여유와 푸근함을 선사하는 주금산 자락은 포천시민이라면 한번 쯤 올라봄직한 산행코스다. 추운 겨울을 인내한 진달래와 철쭉이 다시 제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낼 때 쯤 난 주금산 독바위 정상에 올라 산이 주는 위로를 다시 한번 받고 싶다. 고단했던 내 젊음에게 말없는 위로를 주었던 그 산이 이제 중년이 된 내게 어떤 말을 해줄지 너무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김현목 / 포천신문 시민기자단 명예고문, 국회 보좌관, 내촌초등학교 44회 졸업생
김현목 기자 / 65pine@hanmail.net입력 : 2009년 12월 18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이름 비밀번호
개일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겨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 포천시 해룡로 130-38 (동교동)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편집인 강신옥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아50080 / 등록일 : 2009년 6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