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름을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사는 존재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부모로부터 이름을 부여받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지니기 위해 그 이름을 국가에 등록한다. 이름이 없는 자는 살아도 사회공동체에서 유령인간이 되어버린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도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신의 가장 큰 역할은 만물을 창조하고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이름 속에는 신이 그 사물을 창조한 목적이 담겨있다고 믿기에 그 것의 특유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란 그저 남과 구별하기 위한 형식적 기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미국의 초월주의자들은 모든 생명에는 신의 섭리가 영적 형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삼위일체 신보다는 신이 창조하고 이름을 지어준 자연물을 관찰하고 사유함으로써 신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을 포함한 각 존재의 이름이란 개체의 음성적 기호를 넘어서 신이 그에게 부여한 천부적인 인권과 존엄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존재에 대한 총체적 존엄성을 담보하기에 충분한 상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이름이 거명되는 여러 가지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출석여부를 체크하기 위해서 교사가 호명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익숙하다. 군대생활이나 예비군 훈련 등의 반강제적 군사문화에서도 호명은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인간의 물리적 유무를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는 인간이 하나의 번호 같은 비인간적 존재로 전락한다. 그래서 집단생활에서 이름대신 번호를 불러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는 경우는 인간의 비인간화가 극심한 경우의 예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필자는 가끔 지역의 문화행사에 참석한다. 좁은 지역사회라 서로 얼굴을 알만한 정치인, 관료, 기관장들이 총출동한다. 주최 측은 그들의 참석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빈들이란 이름으로 호명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리를 빛낸다는 의미에서 그들에게 축사가 주어지는 것이 관행이다.
그들의 축사는 그만 그만한 사람들의 참석을 다시 한 번 거론하면서 귀한 시간을 낭비한다. 다음 순서의 내빈은 자신을 거명한 것에 대해 답례한답시고 또 그만 그만한 인물들을 거명하며 치하한다. 이쯤 되면 이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런 정치적 성격의 거명은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요식화 된 행위로 모임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들러리로 전락하게 만든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우스꽝스러운 촌스러움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앉아있는 모임의 회원들이나 시민들을 그들의 정치적인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무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회장이하 주최자들은 시민사회의 주체가 시민들이며, 그 집단의 회원이 주인임을 깊이 명심하고 행사를 시민들과 회원 중심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의 사회극작가 아서 밀러의 “도가니”라는 작품을 보면 이름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냉전시대의 반공 히스테리를 패로디하여 다루고 있다. 미국 정보부는 미국 내에 잔존하고 있는 좌파인사를 가려내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자의 이름을 많이 불어주면 그자를 구제해주는 방법을 쓴 바 있다.
미정부 내에 공산주의자 2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죠셉 매카시의원의 주장은 미국 사회를 ‘레드 컴플레스(Red Complex)에 몰아넣었다. 공산주의자와 말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 체포되는 공포사회가 조성되는 사회적 히스테리를 낳았던 것이다. 밀러는 이를 패러디하여 마녀사냥으로 미쳐 날뛰었던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연극화하였던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이 마녀와 연관되었었다는 사실만 고백하면 목숨을 건져주겠다는 종교재판 판사의 집요한 요구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거짓말로 목숨을 구제하여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 속에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이 담겨있다고 믿었기에 목숨을 위해서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불어내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름의 명예를 인식하는 자들은 남의 이름을 함부로 거명하여 자신의 이익을 구하거나 남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치인들이여, 불투명한 목적으로 문화행사나 시민행사를 오염시키거나 귀한 시간을 낭비하며 남의 이름을 줄줄이 불러대는 몰지각한 행위를 자제하기 바란다.
남의 이름을 불러 자신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킬지는 모르지만 앉아있는 시민들의 시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자신의 행위로 그 모임의 취지가 형편없이 변질될 수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교양이 있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남의 이름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값에 걸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시민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이름의 명예를 획득하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