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가서 공부하는 아들이 고향집에 오는 날이면 어머님은 시골에서 별다른 맛난 음식을 해줄 것이 없다고 팥, 강낭콩, 감자를 푹 삶아다가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수제비처럼 밀가루 반죽을 팥과 감자가 무루 익어가는 위에 얹고 뜸을 들여서 밀가루 떡을 만들어 주셨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이 밀가루 떡을 “쥠떡”이라고 하였다. 1960년대 였기 때문에 6.25사변으로 전국토가 폐허가 된 후 국민소득이 300불도 안되고 온 국민이 가난으로 배고픈 때였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꽁보리밥과 감자와 밀가루를 주식으로 배를 채웠다.
어머니께서는 가난해도 집안 식구들과 같이 먹고 살지 못하고 하숙 생활하는 아들이 늘 걱정되고 마음 편치 않아서 방학 때나 토요일에 집에 오는 아들에게 특식으로 쥠떡을 해주셔서 아들은 쥠떡 맛이 입에 배게 되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공직생활 하는 아들이 부모님을 뵈러와도 어머님은 “얘야 너 좋아하는 쥠떡 해줄게”하시곤 배불리 먹고 남는 것은 싸주시며 가지고 가서 네 식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 애들도 빵과 과자 맛이 입에 밴 탓에 할머님의 정성이 담긴 쥠떡을 좋아하지 않아 늘 2, 3일을 두고 나 혼자 어머님 사랑을 생각하며 맛나게 먹었다.
어머님 세상 떠나신 후 산소에 갈 때나 고향집에 가면 어머님 생각과 함께 쥠떡 생각이 나서 부인보고 쥠떡을 해달라고 하니 할 줄 모른다고 하면서 안 해준다.
지난 동짓달 보름날 이웃마을에 사는 여동생이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하여 퇴원 후 위문을 갔더니 여동생이 오빠 좋아하시는 “쥠떡”을 했다고 하면서 그립던 그 쥠떡을 한 접시 내놓는다.
나는 동생이 어떻게 쥠떡을 만들 줄 아는지 그게 놀라서 물었다. 여동생은 "시집가기 전에 어머님이 쥠떡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웠고 오빠가 집에 올 때면 쥠떡을 만드시던 어머님 생각이 나서 꼭 한번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 온다고 해서 만들어 봤다"며 맛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한다.
맛은 고하간에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립던 음식을 동생이 만들어 주었다는데 나는 반갑고 고마웠다.
쥠떡으로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에게 여동생은 쥠떡을 한보따리 싸주면서 갖고 가서 먹으라고 한다.
꼭 어머니 하던 모습 그대로 한다. 환갑을 넘어 늙어가는 여동생 모습에서 어머님 영상을 보고 돌아와 저녁때 쥠떡 보따리를 풀어보니 그 보따리 속에는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과 어머님 솜씨를 닮은 여동생의 사랑이 함께 쌓여있었다. 나는 사랑이 가득한 쥠떡을 맛있게 또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