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의 축구가 최근 전국규모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것도 유소년, 청소년, 일반에 이르기까지 고른 성과를 얻고 있어 흐뭇함은 느끼지만 언제부터 이렇게 꾸준하게 훌륭한 성적을 내게 되었고 그 저변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근래 축구전문가들에게 기술축구를 전수하며 과학적인 교육을 통해 지(知와) 기(氣)를 겸비한 교육을 가르치는 곳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포천의 김희태 축구센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온 나라가 다 알고 있는 축구 지도자가 우리 포천에 있는데도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에 포천시민의 자부심 차원에서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원래 김희태 감독은 지도자이기 전에 성실성과 재능을 인정받는 축구선수였다. 대신고 시절 전국무대를 휩쓸었고 1973년 100m기록 11초 7의 스피드로 치고 나오는 오버래핑은 선배선수들을 놀라게 하며 연세대 1학년 때 국가대표 풀백으로 선발된다. 7년간의 국가대표선수 생활을 마치고 대우에 입문하여 실전에 능한 프랑스인 곤잘래스 감독에게 특별지도를 받으며 정확한 패스와 스피드 조절, 효율적인 움직임과 같은 아름다운 프랑스 축구를 배웠고, 프로축구 원년인 1983년 30세로 대우에서 은퇴하여 아주대 코치가 되었을 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독출신 엥겔 감독에게 과학적이고 철저한 훈련 프로그램을 전수받는다.
특히 동독에서 유소년대표팀을 지도했던 엥겔감독은 한해계획을 시즌 전에 미리 작성해 오차 없이 그대로 실천하며. 훈련 강도에 변화를 주면서 경기 때 최상의 컨디션에 이르도록 하는 과학적 훈련을 실천하였다. 이런 엥겔에게 더 많은 기술을 뺏어내기 위해 김 감독은 일부러 그의 이론에 시비를 걸며 토론을 벌여 곤잘레스와 엥겔에게 400여개에 이르는 전술을 그림으로 터득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아주대 코치 시절에는 이름 있는 선수가 청소년대표 출신의 신입생 장정 한 명밖에 없었지만, 그는 가르치는 선수들의 숨은 재능 보고 특유의 약점을 없애는 세밀함을 발휘하며 무명 선수들을 다듬어 1년 반 만에 전국체전서 막강 고려대를 꺾고 우승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후 대우코치로 복귀해 정해원 김주성 김판근 김풍주 등 한국 최고의 스타들을 지도하였고, 91년 아주대에서 돌아와 김현수 김재영 명진영 이장관 우성용 안정환 등을 대표급 선수로 키우며 대학무대를 평정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학구파로도 소문난 김희태 감독은 연세대 시절 부상으로 운동을 쉴 때 100% 수업에 참석하며 공부에 습관이 들이게 되고, 아주대 코치 때에는 연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아 연대, 아주대, 수원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명지대에서는 감독 외에 겸임 부교수를 맡겼으며 스포츠 신문에 해설을 쓰기도 했다. 또 그는 당장의 성적보다는 훗날 대성할 재목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여 주목 받지 못했던 선수들을 대부분 프로에 진출케 하여 특유의 지도철학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20년간 배출한 스타급 축구인재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나 정작 ‘김희태’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멀미약 귀미태는 알아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그 이유를 선수시절에는 수비수라 화려하지 않았고 국가대표 감독 경력이 없는 탓이기도 했다고 회고 한다.
그러나 월드컵이후 김희태라는 이름 앞에는 안정환과 박지성을 키운 감독으로 알려지면서 지도력을 재조명받는다. 김 감독이 발탁하여 스타 선수가 된 안정환이나 박지성도 처음에는 그리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초 처음 만난 안정환에게서 천부적인 감각을 발견하게 되는데 많이 뛰지 않아 쉽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안 선수를 발탁했고, 1998 월드컵 팀의 차범근 감독에게 추천해서 태극 유니폼을 입혔다고 한다. 김 감독은 안정환을 4년간 계속 가르쳤다면 볼을 끄는 나쁜 습관과 적극적으로 뛰지 않는 약점을 고쳤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말하기도 한다.
박지성의 경우도 고3 당시에는 힘이 약하고 체구가 작아 관심을 갖는 대학이 없었으나, 지구력과 패스감각을 보고 스카우트하여 3개월의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잔디가 억센 호주에서의 기술훈련을 거쳐, 입학과 함께 올림픽대표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파란만장 했던 대학과 프로팀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마치고, 이제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꿈꿔왔던 김희태 축구센터를 만들었다. 그가 포천에 들어와 축구를 가르친 세월이 벌서 7년이 되었고, 이곳 포천에서 유소년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쳐 안정환 박지성을 능가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스타들을 만들어 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1145-38에 위치한 김희태에서 훈련 중인 유망주 중에서 중학생은 인근 일동중으로 전학하여 일반학생과 똑같이 정규수업을 받고, 오후 4시 이후에 훈련에 들어가며 매주 토요일 한차례씩 기존 팀들과 연습경기를 갖고, 대회에는 일동중학교와 일동고등학교 소속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렇게 공부와 훈련을 병행한 결과로 금년에는 일동고등학교 축구선수 임성렬군이 뉴욕주립대에 당당하게 합격하는 영예를 안아 운동선수는 공부를 못한다는 인식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김 감독은 자라나는 선수들이 빠른 변화를 보일 때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며 경기에 이기는 것을 가르치기 보다는 축구에 흥미를 갖고 기본기를 충실하게 익히는데 주력한다고 한다. 평소 이런 지론을 가지고 있는 그가 유소년 축구의 저변 확대와 운동과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공간 확보와 선의의 경쟁을 통한 유소년 팀 간의 우호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런 뜻에서 금년 10월에 치러진 ‘제1회 FC KHT 이사장배 추계전국유소년클럽축구대회’에는 전국에서 58개 팀이 참가해 그 의미를 곤고히 했다.
앞으로 김 감독의 바람은 전국적인 대회를 치르는데 필요한 숙소의 부족과 스포츠메세나 운동이 전파되기를 바라고 있다. 스포츠메세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축구영재들을 직접 후원하거나 부상을 입었을 때 무료로 치료해 줄 수 있는 의료적인 지원, 그리고 세계적인 팀을 육성하는데 필요한 기업의 기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를 보고 돌아오는 뒤에는 묘한 여운이 감돌았다. 아름다운 포천의 산자락을 끌어안고 그렇게 소원하던 평생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진정한 축구인 김희태 감독, 그의 얼굴에서 나는 맑고 밝은 포천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