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지요? 빼빼로 데이는 발렌타인데이에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릿 선물을 하며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11월 11일을 닮은 빼빼로를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대한민국의 사이비 기념일이 되어버렸어요. 빼빼로데이는 1996년에 부산의 모 여중생들이, 서로 날씬해지라는 뜻으로 친구들에게 선물하게 되어 생겼다는 설도 있고 또 과자 회사의 상술이라는 설도 있다고 해요.
그런데 여러분, 혹시 꼭 빼빼로를 사고 싶어서 산다고 해도 친한 친구 한두명과 주고받는 정도만 해야지 부모님께 빼빼로 사게 돈 달라고 하면서 부담을 드릴 정도로 하면 안되겠지요? 반 전체에게 돌릴 필요는 없어요.” 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에도 내 머리 속에서는 빼빼로를 줄 친구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유정이, 주희, 혜민이, 다령이, 세미, 다희...... 꼭 줘야 할 친구들이 어림잡아도 30명이 넘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동안 모아두었던 용돈을 꺼내어 친구 수에 맞춰 빼빼로를 샀다. 밤늦도록, 빼빼로에 넣어서 친구들에게 줄 편지를 쓰느라고 끙끙거리는 나에게 엄마는, “어휴 바보, 빼빼로 회사의 상술이야.” 하시며 혀를 차셨지만 난 사이비 기념일이라 해도 좋고 과자회사의 상술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기회에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 정성이 담긴 편지를 손으로 직접 써 넣어서 값싼 빼빼로지만 선물함으로서 내가 부모님을 선생님들을 그리고 친구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며칠 전에 엄마랑 엄마 친구께서 “옛날에는 자식을 많이 낳아 길러서 양보나 협동 책임감 우애 등 사회성 공부를 가정에서 저절로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나 남 할 것 없이 자식을 조금 낳아 왕처럼 떠받들고 키우니 대부분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들이 되어간다니까? 미래의 세상에 정이란 게 남아 있기나 할런지 모르겠네.” 하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었다.
상술에 넘어가는 바보라느니,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인데 쌀로 만든 가래떡이나 사서 나눠먹지 왜 쓸데 없는 짓 하느냐는 등 빼빼로데이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이런 기회가, 이런 날이 있는 것이 좋다. 가정에서 하나뿐인 자식이지만 내 이웃과 형제인 것처럼 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사랑이 담긴 편지와 함께 받은 빼빼로는 내년 빼빼로데이 날에도 후년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언제까지나 나를 잊지 않게 해 주고 정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난, 좋은 뜻을 간직할 수 있는 날에 혹시 소외되는 친구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 되어, 특별한 친구들에게 줄 빼빼로를 모두 준비한 다음 여분의 빼빼로를 조금 더 준비했다. 빼빼로를 하나도 받지 못하는 우리 반 친구가 있으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두들 친한 친구들이 있고 소외된 친구가 없어서 여분의 빼빼로는 다함께 나눠 먹었다.
오후에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길, 길가 여기저기에 빼빼로 빈 상자가 굴러다녔다. 그것들을 보니 친구들에게 받은 빼빼로를, 사랑을 그리고 양심을 버려서 길가에 굴러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찬 바람이 휭 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