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명절이 되면 충남 서산 일대에 사는 독거노인들 집 수십 채 앞에는 맑은 천일염 30킬로그램 들이 포대가 놓여 있곤 했다.
13년째다. 아무도 누군지 몰랐다. 지난해에 불우이웃돕기 주인공이 밝혀졌다. “나 혼자 여러 해 동안 소금을 나르다 보니 힘이 들어서”읍사무소에 맡기겠다고 소금을 트럭에 싣고 그가 자수했다.
강경환(50). 충남 서산 대산읍 영탑리에서 '부성염전'이라는 소금밭을 짓는 염전업자다. 그런데 보니, 그는 두 손이 없는 장애인이 아닌가? 손 없이 염전을? 또 서류를 살펴보니 그는 7년 전까지 그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빈한한 사람이 아닌가?
소금장수 강경환은 사건이 발생한 연월일시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1972년 12월 24일 초등학교 6 학년 겨울방학에 전쟁 때 묻어놓은 대인지뢰, 속칭 발목지뢰에 두 손을 잃었다. 피를 너무 흘려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살아났다. 하지만 “남보기 부끄러워서” 중학교는 가지 않았다. 소년은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되도록 그리 살았다. “모든 게 귀찮아서 농약 먹고 죽으려고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유인물이 하나 왔길래 무심코 버렸다가 아침에 다시 유인물을 보니 정근자씨라고, 팔 둘이랑 다리 하나가 없는 사람이 교회에서 강의를 한다는 거예요. 가서 들었죠”
"야,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는 그 반도 아닌데, 이 사람같이 못 살라는 법 없지 않나”강경환 씨는 편지를 썼다.“나도 당신처럼 잘 살 수 있나요?” 답장이 왔다.'당신도 나처럼 잘 살 수 있다'고. 훗날이 된 지금, 강경환 씨는 이렇게 말한다. “손이 있었다면 그 손으로 나쁜 짓을 하고 살았을 거 같다. 손이 없는 대신에 사랑을 알게 되고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되고, 새롭게 살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강경환 씨는 훌륭하게 그 방법을 찾아냈다. 1994년, 아버지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너 염전 할 수 있겠냐?"이미 1987년 교회에서 사랑을 만나 결혼한 가장이었다.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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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 나는 삶이 시작됐다. 농사짓는 삽보다 훨씬 무겁고 큰 삽을 ‘손 몽둥이’로 놀리는 방법을 익히면서 해야했다.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보람으로 일을 했다. 1996년 그 와중에 그의 머리속에 남을 돕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이 손을 잃은 대신에 얻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소금 한 포대가 1만원 가량 하는데, 여기에서 1000원을 떼서 모았죠, 그걸로 소금을 저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는 겁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올해까지 14년째다. 아산의 한 복지단체를 통해 소록도에 김장용 소금을 30포대씩 보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강경환 그는 말했다. "하나를 주면 그게 두 개가 되서 돌아오고, 그 두 개를 나누면 그게 네 개가 되어서 또 나눠져요. 연결에 연결, 그게 사는 원리지요.”
오늘도 부부가 소금밭에 나가서 소금을 거두는데, 손 없는 남편이 능숙하고 진지한 몸짓으로 소금을 모으면 아내는 얌전하게 삽으로 밀대에 소금을 담고, 남편이 그 밀대를 ‘손몽둥이’로 밀어소금창고로 가져간다.
그 모습..실로 장엄(莊嚴)하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운 마음'을 보았다. 당신 같은 분과 이 지구상에서 함께 호홉하고 있음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