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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이보용] 포기를 모르는 인생


이보용 기자 / leewalking@naver.com입력 : 2009년 09월 19일
↑↑ 이보용 포천신문 자문위원장
ⓒ (주)포천신문사
처칠이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위엄있는 차림으로 담배를 물고 식장에 나타났다.

처칠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천천히 모자와 담배를 연단에 내려놓았다.
청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입에서 나올 근사한 축사를 기대했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

그는 힘 있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뗐다.
그리고는 다시 청중들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청중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Never,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처칠은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일곱 번의 Never Giver Up, 그것이 축사의 전부였다.

청중은 이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사실 이 박수는 그의 연설에 보낸 박수라기보다는
그의 포기를 모르는 인생에 보낸 박수였다.

처칠은 팔삭둥이 조산아로 태어나 말더듬이
학습장애인으로 학교에서 꼴찌를 했고,

큰 체격과 쾌활한 성격 때문에 건방지고 교만하다는 오해를 받았으며,
초등학교 학적 기록부에는 '희망이 없는 아이'로 기록되었다.

중학교 때에는 영어에서 낙제 점수를 받아 3년이나 유급하였다.

결국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에는 입학할 수 없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사관학교에도 두 차례나 낙방했다 들어갔고,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첫 선거에서도 낙선하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다시 도전해 당선되었다.

노동당에서 21년 의정 생활 동안 사회 개혁을 주도했던
그는 성취보다는 실패와 패배가 더 많아,

당적을 보수당으로 바꾸어 출마했으나 역시 첫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연설 내용대로 언어 장애를 극복하고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되고,

세계 대전의 영웅도 되고,
위대한 정치인도 될 수 있었다.

처칠의 가장 큰 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당시 수상이었던 그는 영국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피와 흙과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가 국민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했고,

또 다른 연설에서는
"국기를 내리고 항복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대양에서도 싸우고 해안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처칠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은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일조해 영웅이 되었다.

<제공 : 이보용 / 포천신문 자문위원장 (leewalking@naver.com)>
이보용 기자 / leewalking@naver.com입력 : 2009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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