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시는 아버님께서 친척집 결혼식에 가시기 위해 파주에 사는 큰 아들집에서 주무시게 되었다.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 구두의 먼지를 털다가 깜짝 놀랐다. 결혼식에 가시려고 신고오신 아버지 구두에는 진흙이 말라붙어 있고 흙물로 얼룩져서 많은 사람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운 상태였다.
나는 아버님 구두의 흙과 얼룩을 제거하고 군대시절 배운 구두닦기 실력을 총동원하여 물광, 불광을 시도하여 얼굴이 비치는 거울처럼 광을 내놓았다.
아침식사를 끝내시고 서울 결혼식에 가신다고 일어서신 아버님께서는 “아이고 아범이 구두닦이한테 가서 내 구두 잘 닦아 놨구나.” 하시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집을 나가셨다.
아버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날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앞으로 아버님께서 우리 집에 오시면 구두만은 내손으로 광을 내드려서 아버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내가 군대생활 할 때는 상사들의 구두도 계급 때문에 싫은 마음으로 닦아 주었는데 내부모님 구두닦아 드리는 일이야 얼마든지 기뿐 마음으로 최상의 실력을 발휘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실 때 마다 나는 아버님 모르게 구두의 광을 내는데 정성을 다했고 아버님께서는 구두닦는 사람에게서 광내온 것으로 아시게 했다.
한 20여년을 아버지 구두를 닦아드리다가 1994년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나는 아버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새털같이 작은 효도기회 마저 놓쳐 버렸다.
아버님 생전에 아버님 구두를 닦다가 남은 구두약으로 내구두도 닦는 버릇이 생겨서 나는 아침세수 하기 전에 구두를 닦아 신고 출근하고 직장에선 요일별로 구두닦이 소년들이 유로로 구두를 또 닦아준다.
그런데 2006. 3 어느 날 아침 내구두를 닦다가 보니 아들 녀석의 구두가 보인다. 아들도 취직을 해서 직장에 나가게 되어서 구두를 신게 되었는데 살펴보니 구두에 광이 없다.
나는 망설였다. 아들 구두도 닦아 주어야 하나? 아들이 내구두를 닦아 주어야 하는데 늦잠 많은 녀석보고 구두닦아 달랄 수도 없고 내구두 닦는 김에 아들구두도 닦아 주자 “내가 군대에서 나보다 나이어린 장교의 구두도 닦아 보았는데 내 자식 구두 닦는 거야 뭐 자식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그날이후 지금도 매일아침 나는 아들구두 닦아주는 못난 애비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구두닦을 때와 아들구두 닦는 법은 다르다. 아버지 구두는 내구두보다 먼저 닦았고 물광 불광을 내드렸지만 아들구두는 내구두 먼저 닦고 그 다음에 아들구두를 닦으며 광도 옛날 아버지 구두광보다 못하게 닦는다.
그러나 같은 것은 둘 다 당사자들이 모르게 닦지만 아버님께는 작은 효도를 받치는 것이고, 아들에게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에 나는 구두 닦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