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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희용] 되찾은 지명 ‘王方山(왕방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09년 08월 27일
↑↑ 이희용 포천시예총회장
ⓒ (주)포천신문사

필자는 지난 2007년 8월 10일 포천신문 문화예술면에 왕방산의 한자표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유래와 기록을 예를 들어 특별기고를 통하여 지적한바 있다. 그 내용의 요약은 이러했다.

“왕방산의 이름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전해오는 유래가 있는데 현재 정상 王訪山이라고 이름이 잘못 표기되어 있음을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 밝혀 보고자 한다.… 왕방산의 한자표기를 일제 때에는 산 이름의 첫 자인 왕자에 날 일(日)자를 붙여 旺자로 바꿔 표기했으나 최근에는 다시 王자로 돌려놓았다. 서울에 있는 인왕산(仁王山)과 같은 경우다. 그런데 그 이름을 바꿀 때에 많은 자료를 참고 했겠지만 우리가 조선왕조실록과 대동여지도에 실려 있는 기록에는 왕방산의 가운데 글자가 訪가 아니고 方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신뢰하고 인정하는 기록문화인 조선왕조실록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지도라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포천의 진산인 왕방산의 올바른 이름은 王方山이고 그 올바른 이름을 찾아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訪자가 아니고, 方으로 표기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나 대동여지도에 여러 번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므로 산의 이름에 대한 논의는 더욱 많은 연구를 통하여 제 이름을 찾아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을 게재하면서 그 증거 자료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발췌하여 이해를 돕게 했다. 그때 제시한 조선왕조실록에 왕방산에 대한 기록의 내용에는 모두 15회 王方山으로 되어 있었던 기사들을 발췌해 제시했다.

“태종때 4번 기록 태종 27권, 14년( 1414 갑오 / 명 영락(永樂) 12년) 2월 28일 임신 1번째 기사 해룡산(海龍山)과 왕방산(王方山에서 몰이하였다. 임금이 사슴 3마리와 노루 1마리를 쏘았다. ○壬申/驅海龍山及王方山, 上射鹿三獐一,
세종 때 4회 기록 世宗 11卷, 3年( 1421 辛丑 / 명 영락(永樂) 19年) 3月 29日 辛卯 1번째 기사 상왕이 왕방산(王方山) 아래에서 노루를 쏘고, 또 심곡(深谷) 남쪽 산 아래에서 사슴을 쏘았다. 저녁에 영평현 강시(江時)의 들에 머물렀다. ○辛卯/ 上王射獐于王方山下, 又射鹿于深谷南山下, 夕次于永平縣江時原。
세조 때 5회 기록 세조 18권, 5년( 1459 기묘 / 명 천순(天順) 3년) 10월 13일 신유 1번째 기사 임금이 대장소 종사관(大將所從事官) 권절(權節)에게 명하여 우상(右廂)으로 하여금 왕방산(王方山)에 진을 치도록 했는데, ○辛酉/ 命大將所從事官權節令右廂陣于王方山,
성종 때 2회 기록 성종 109권, 10년( 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15년) 10월 13일 을미 1번째 기사 대가(大駕)가 왕방산(王方山) 사장(射場)에 이르자, ○乙未/駕至王方山, 射場令宗宰,”

그 후 2년의 세월동안 문화원 관계자나 시청 관계공무원 그리고 언론인을 비롯한 식견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왕방산의 이름을 원이름으로 돌려주자고 설득했고 지도에 대한 증거로 문화원에서 1997년 발행한 책인 포천의 사‧단‧정려 15쪽과, 1998년 발행한 포천 금석문 대관 14쪽에 대동여지도 포천부분을 보여 주면서 왕방산 정상의 표지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안타까운 마음과 애향심으로 많은 사람에게 역설해 왔다.

그렇게 서서히 여론은 형성되었고 사실관계가 확인되어 최근 포천시가 문화원 지명위원회를 열어 다음과 같은 반가운 조치를 하였다. 2009년 8월 23일자 매일경제에 연합뉴스 우영식 기자가 제공한 기사에서 이렇게 발표되었다.

“포천시 ‘왕방산' 한자표기는 '王方山', 경기도 포천시는 지명위원회를 열어 신읍동과 신북면에 걸쳐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왕방산(해발 737m)의 한자표기를 '王方山'으로 통일했다고 23일 밝혔다. 왕방산은 그동안 한자표기가 '王方山', '旺方山', '王訪山' 등 3가지로 혼용돼 혼란을 빚어왔다. 특히 1999년 산 정상에 세워진 표석에는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임금 왕(王)' 자와 '찾을 방(訪)'를 사용한 '王訪山'으로 표기돼 있어 오기를 지적하는 여론이 많았다. '王方山'의 경우 조선 초기 왕의 수렵장 등으로 사용되면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신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포천읍지 등 각종 문헌에 등장하고 있다. '성할 왕(旺)'자와 '모 방(方)'자를 사용한 '旺方山'은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 이요의 묘가 왕방산 자락에 이장되면서 주로 조선 중기인 숙종. 영조 때 승정원일기나 각종 문집에 주로 나온다. 또 '王訪山'은 1997년 간행된 포천군지에만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포천시 지명위원회는 문헌 기록 등에 사용 시기가 가장 길고 많이 등장하는 '王方山'을 왕방산의 한자표기로 사용하기로 하고 경기도 지명위원회를 거쳐 중앙지명위원회에 안건을 상정,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시(市) 최동원 학예연구사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등 다양한 자료에 왕방산(王方山)의 표기가 일관되게 사용돼 지명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참으로 잘된 일이다.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번 인식된 언어를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포천의 진산인 왕방산(王方山)의 이름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족보를 찾아낸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왕방산의 지명을 올바로 한 것은 역사바로세우기와 정체성을 찾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그 시작을 지역 언론에서 출발하여 뜻을 이룬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다시 돌아보면 2년 전 포천신문이 담아낸 특별기고가 왕방산의 지명을 되찾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이번 왕방산의 지명표기를 되찾게 한 가장 중요한 매체는 포천신문이었고 이런 일들이 지역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본보기를 보여 준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왕방산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의 글자도 ‘王方山’으로 서둘러 고쳐 놓자.

이희용 포천시 예총회장 (heeyeong1@hanmail.net)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09년 0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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