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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희용] “자연을 노래하는 오세철의 풀피리”


이희용 기자 / 입력 : 2009년 07월 17일
↑↑ 이희용 포천시예총 회장
ⓒ (주)포천신문사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2리에는 2002년 9월 1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받은 풀피리 예능보유자 오세철씨가 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1971년 8월 고 전금산 선생님으로부터 풀피리 연주법을 사사받은 그는 선생님으로부터 우리의 중요한 민속음악을 꼭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고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중한 우리민족의 음악을 계승 보전하고자 하고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그동안 대통령이 초청한 공연을 비롯해 700번이 넘는 공연을 해오고 있다.

그는 많은 방송출연과 각종 무형문화재 공연을 해오면서 틈틈이 풀피리 홍보영상물을 제작 배포하는가 하면 전수교육 교본을 만들어 무형문화재 유지보존과 전승에 더욱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 결과 풀피리보존회가 만들어졌고 매달 정기 모임을 열고 있는데 제주도에서도 풀피리를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그의 풀피리 소리는 전통음악부터 민요, 동요, 새소리까지 다양하여 폴피리 연주를 하는 동안에는 날아가던 새들도 모여들어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우리 음악의 기본서인 악학궤범에는 ‘초적은 나무껍질이나 나뭇잎을 말아서 입에 물고 불기도 하며 나뭇잎을 접어서 입술에 대고 불기도 한다’고 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과 중종 때는 궁중에 풀피리 악사를 두기 위해 전국적으로 재주 있는 풀피리 연주자를 선발하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1744년 영조 20년 10월 4일에는 대전 연회의 대왕대비전에서 주악을 담당하였던 관현맹인 13인의 이름과 담당 악기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초적(草笛) 1인이 포함되어 있으며 연주자가 강상문(姜尙文)이라는 실명도 기록되어있다.

오세철씨가 처음 풀피리를 불게 된 계기는 중학교 1학년 때이다. 1971년 여름방학 때 경기도 가평 친척집에 놀러가던 때에 그렇게 우연히 풀피리 소리를 듣게 된다. 무엇에 홀린 듯 소리를 따라간 그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싸리문 앞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눈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이 툇마루에서 아카시아잎으로 창부타령을 부는데 얼마나 소리가 좋은지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고 한다. 당시 열 네 살의 오세철은 이미 우리 소리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의 고향에서는 실향의 애환을 담고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황해도, 평안도 등에서 불리던 서도소리가 곧잘 불려 지고는 했다.

아버지를 닮아 우리 소리를 곧잘 따라 부르던 그는 그날 들은 풀피리 소리가 너무 좋아 잠을 뒤척였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소년 오세철은 틈만 나면 50리 길을 자전거로 내달렸다. 여러 번에 걸친 간곡한 부탁 끝에 이 열정적인 소년을 제자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분이 바로 전금산(田今山)선생이시다.

당시 전금산선생은 소년 오세철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풀피리가 좋긴 한데 아무나 배우기가 힘든 거다. 이건 하늘이 내는 소리다. 하늘이 낸 사람이라야 제대로 소리를 내고 경지에 이르는 것이란다.” 그 후 소년은 정식으로 제자가 되고부터 스승을 따라다니며 산에서 들에서 시냇가에서 풀피리를 배웠다.

어느 때는 독초인지도 모르고 연습하다 정신을 잃기도 했고 목구멍까지 옻이 오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한 박새풀을 물고 불다가 정신을 잃기도 했다. 그래도 풀피리가 좋았다. 하지만 아들이 아예 소리쟁이 길로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오세철이 군대에서 제대하자 바로 서둘러 결혼을 시키고 아버지 뜻대로 부지런한 농부이며 성실한 가장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잊으려 해도 풀피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틈만 나면 풀잎을 만지작거리며 한숨 쉬는 남편을 보고 있던 아내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 한이 된다며 남편 손을 이끌고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이은관 선생을 찾고 전수자가 된다.

그 후 1년 반 만에 배뱅이굿 완창이 가능해진 오세철씨는 풀피리 연주자이자 소리꾼으로서 전국을 다니며 공연하게 된다. 기필코 소리꾼이 된 아들을 걱정 하시던 부친께서는 아들이 2002년 11월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예능보유자로 선정되는 것을 못보고 돌아가시게 된다. 오세철은 그 후 일 년을 매일같이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아버지에게 마음의 풀피리 소리를 들려드리게 된다.

풀피리 불면 어딘가 모르게 고향을 떠올리게 되고 넓은 벌판과 시냇물이 흐르는 마음의 고향에서 풀피리를 불고 인정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 한다. 오늘도 포천에서 고향의 소리를 담은 오세철의 풀피리 소리가 산과 들을 넘나들며 울려 퍼져 나가고 있다. 그 소리 가락에 자신의 땅 언저리 일부에 풀피리 전수관을 세워 관광코스로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일구는 그의 눈에는 아름다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자랑스런 조상들의 슬기로운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고 있는 오세철 그는 진정으로 우리 것을 사랑하고 이어가는 자연인이다.

이희용 포천시 예총회장
이희용 기자 / 입력 : 2009년 0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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