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절에 가면 해우소(邂憂所)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또 무우당(無憂堂)이란 현판도 볼 수 있다. 큰 절에서나 볼 수 있는 해우소란 무엇인가? 그것은 변소를 말하는 것이다. 영어로 토일렛(toilet)을 말하는 것이다. 화장실을 말하는 것이다. 변소나 화장실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해후소라 했을까?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급한 용무(用務)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급한 용무란 배설(排泄)을 말하는 것이다. 대소변(大小便)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웃음 자아내는 표현인가? 여기서 우리는 선조들의 해학(諧謔)을 본다.
기우(杞憂)란 말이 있다. 쓸데없이 걱정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憂)란 기우를 말하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을 말하는 것이다. 성격이 대담한 것 같으면서도 소심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괜한 일에 걱정이 많다. 근심이 많다. 걱정과 근심으로 항상 마음이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근심이 되는 것이다. 땅이 꺼질까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바삐 움직여야 한다. 마음의 여유를 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여유로우면 걱정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걱정이 쌓이면 근심이 되고 그것이 적체되면 우울(憂鬱)해진다. 우울증을 피해야 한다. 아니 극복(克服)해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우울증에 걸리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삶의 의욕(意慾)을 잃는다. 절망(絶望) 상태에 빠진다. 무서운 병증이다. 어떻게 하면 우[憂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해결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무우(無憂)다. 근심 걱정거리를 아예 없애는 것이다. 근심 걱정거리가 없는데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산다. 이 세상에 없는데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무우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무우의 경지(境地)에 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해우는 생리적(生理的)인 문제를 풀어준다. 생리적인 문제와 관련이 깊다.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것이다. 무우는 심리적(心理的)인 문제를 풀어준다. 심리적인 문제와 관련이 깊다.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것이다. 생리적인 것은 배설(排泄)을 하면 풀어진다. 섭취(攝取)한만큼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심리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다스려야 해결할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이다. 무심(無心)의 경지에 드는 것이다.
근심 걱정은 마음에서 오고 마음으로 낫는다. 병도 마음에서 오고 마음으로 낫는다. 생각은 뇌에서 화학작용(化學作用)을 일으킨다. 분노와 적대감은 심장박동(心臟搏動)을 빠르게 하고 혈압(血壓)을 증가시키며 얼굴을 상기시킨다. 불안감(不安感)에 사로잡히면 식은땀이 흐르고 속이 답답하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이내 하얗게 질리고 만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하는 이유이고 긍정적(肯定的)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스트레스는 의학적(醫學的)으로 실체가 없는 존재다. 그러나 이 실체 없는 존재마저도 호르몬이란 실재하는 물질을 통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친다. 몸 안의 세포(細胞)들은 순간순간 마음을 물질로 변화시킨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화학적(化學的)인 메시지(message)로 전환시킨다. 이처럼 우리 몸이 우리의 생각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관계로 불안함에서 오는 심리상태(心理狀態)가 생리적(生理的)으로 해로운 변화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왜곡(歪曲)된 생각은 뇌에서 화학작용이 왜곡되는 것과 연관(聯關)이 있다. 뒤틀린 분자(分子)가 없다면 뒤틀린 생각도 없다는 말이다. 세상을 바로 보아야 하는 이유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채색(彩色)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온통 물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공포(恐怖)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해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무우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 무우당은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한 삶을 살라고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