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때 흉년과 기근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쌀을 일반 사람들에게 분배한 큰 상인 여인 김만덕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역사적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흔히 우리네 인생을 한편의 극본 없는 연극으로 자주 비교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에는 연극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많은 부분이 생의 역정과 고난 그리고 감동이 교차하는 한편의 드라마와 다르지 않기에 자주 비교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연극은 사람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며 마지막에는 가슴시리는 감동으로 우리네 가슴을 흔드는 마력이 있는 것이다. 극을 완성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배우가 그 최우선일 것인데 이야기의 전개와 움직임의 주체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변하고 옆에 있는 배우의 실수나 함께 하는 스탭의 실수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유능한 배우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삶에서도 수많은 실수와 고난이 닥쳐오게 되고 그때마다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잃어버린 어설픈 배우와 같이 당황하고 절망감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는 경우가 비일 비재 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위기를 수없이 극복하고 자신의 성공을 만들어 준 사회에 대하여 아름다운 보담으로 실천한 큰 배우을 든다면 얼마 전 작고하신 동천(東泉) 강수동(姜秀東)님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분의 인생 역정은 수많은 실패로 인한 고통과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끝내는 성공을 이룬 큰 배우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한국전쟁 후 어려운 생활 형편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시고 살벌한 사회에 뛰어들면서 온몸으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실패를 이긴 소나무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성공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자신을 이기고 결과를 만들어 준 사회에 대해 진정한 마음을 더불어 살아가는 덕을 베풀어 받은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사회로 되돌려 보내려는 그의 마음이 있었기에 주위의 존경을 받았던 것 같다.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연극을 감동적으로 살다 가신 큰 배우의 삶을 잃은 것이 안타까워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그분의 역정을 정리해 본다.
동천 강수동 회장은 본이 진주로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 태어났다. 신용을 최고의 덕목으로 손님에 대한 격 있는 예우와 검소한 본인의 생활로 이루어 낸 노력의 결과는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축적 그 것이 그분을 성공의 길로 안내한 길잡이였다고 회고 했다.
50년대 피난 터에서 미곡상과 주류노점상을 비롯하여 트럭과 노선버스 운수업으로 실패를 했지만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피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였고 80년대 초에 시작한 석재사업도 여러 차례 실패 후에 뚝심으로 (주)삼우석재를 성공적으로 설립하였다. 이렇게 일어선 포천의 삼우석은 전국적으로 그 품질의 우수성이 알려져 대법원청사 신축에 전량을 납품하게 되고 수준 높은 건물마다 이 회사에서 생산되는 석재로 만들어지게 된다. 여러 차례의 어려움을 극복하였던 삼우석재는 이렇게 동종업체 중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여 성공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을 일구어낸 동천 강수동님은 그 동안 드러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사회 구석구석에 어렵고 소외된 곳을 향해 무의탁노인, 장애인, 자원봉사단체 체육, 문화예술단체 등 수없이 많은 곳에 물질적으로 크게 도움을 주었고 마음으로도 측은지심을 발휘 하시어 끝까지 겸손을 유지하며 절대로 내세우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를 지켜보는 지역주민들은 진정으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포천의 인재양성을 위하여 2003년에 사재 3억원을 출연하여 경기도 교육위원회 허가 2003-4호로 동천장학회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였다. 그리하여 2003년 이자수입 1천 2백만 원과 출연금 1천만 원을 포함하여 2004년도에 처음으로 20명의 학생에게 2천 2백 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2004년에는 다시 기본자산으로 2억원을 추가 출연하여 총 5억원의 자산을 갖춘 장학회로 자리매김하였다. 장학회 설립동기에 대해서 강회장은 “배우 싶어도 돈이 없어 배움의 길을 갈 수 없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고 배움의 기회를 확대 하고자 하는 것을 설립취지로 밝히고 10억이 넘는 사재를 털어 실질적인 인재양성을 위하여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히고 그것을 끝까지 실행 하였다.
이밖에도 포천메나리가 유지보존에 예산문제로 어려워하자 매년 1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하여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역에서 스스로 성장한 예술문화단체에 대한 후원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포천문화원이 원장 선출과 관련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나 포천예총이 임기 중 회장의 작고로 어려운 시기를 맞았을 때 특유의 봉사정신으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문화예술과 우리의 정신을 지키는 일에도 그 역할을 다하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 어로 귀족이 해야 할 의무라고 풀이 하고 있다. 이는 사회 지도층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의 울타리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며 그 속에서 정당하게 얻어낸 부와 권력과 명성으로 그것을 만들어준 사회에 기여해야한다는 것으로 성공은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는 사회에 대한 기여와 보답의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강수동회장의 이러한 업적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겸양지심과 측은지심의 진솔한 실천자로 사회를 사랑하고 지역에 대한 포근한 마음을 간직한 이 시대에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실천가 이었다는 것을 가슴 저미게 느끼게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연극을 훌륭하게 마무리 하고 무대를 떠나는 그분을 보내드리며 과연 어떤 삶이 진정으로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인지를 되새기며 그를 보내는 예총회원 일동의 조시를 되새겨 본다.
강수동회장님 편안하게 잠드소서.
作 이 희 용
동녘에 솟아나는 맑은 샘물은 아우성치는 삶의 벌판에서 힘에 겨워 허리 굽은 여린 소나무 되었고 뼛속까지 빗발치는 난리 속에서 언발을 동동거리며 속절없는 세월을 이기셨도다.
사람 사이를 믿음으로 끌어안아서 사무치는 그릇에 온정을 담아 초심에 품은 약속 마르지 않았고 돌을 옮겨 성을 쌓고 힘겨움을 등에 지고 깊이 이곳에 박혀 짙은 향기를 내도다.
성난 물마루에 던져진 조롱박은 물끊긴 나뭇가지 말라붙어서 바람 속에 흔들이는 가녀린 불꽃처럼 따뜻한 아버지는 고름담긴 쌀가마니를 언덕 없는 아이에게 베풀어 주고는 어린 아픔보고 마음으로 울면서 오장육보를 꺼내 가슴 속에 보듬었도다.
힘겨운 배움의 길 상처받은 어린가슴에 꿈을 심고 사랑 넣어 새 옷으로 갈아입혀 어깨 두드리며 안아주었고 메나리 고운 선율 무릎을 치며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셨도다.
백척간두 어려움마다 길라잡이 되어 위기를 넘기는 큰 배우로 우리소리, 무대에 몸짓, 한 폭의 그림마저도 얼싸안고 심장으로 데워 주시더니 가녀린 숨결마저 버리셨도다.
지금 우리는 동쪽을 바라다보며 아비 잃은 어린 양처럼 목 놓아 울부짖어도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음이여.
아- 그 고운 숨결 마지막 한 자락마저도 냉정하게 하늘이 거두어 가시니 큰 울타리 잃고 무대를 배회하는 이름 없는 어릿광대는 남모르게 보살핀 고운 품이 그리워 핏줄세운 슬픈 목이 흔들리도다.
삶의 큰 예술가 강수동 회장님 ! 처음에 오셨던 아름다운 그곳에서 편안하게 잠드소서.
- 포천시예총 회원일동 -
그렇게 애절한 사연을 두고 자신을 낮추면서 모든 사람을 사랑과 겸손으로 대하다가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는 그렇게 서 있었다. 어설픈 인생연극을 살아갈 때마다 위기 극복능력이 탁월하여 그 품에 의지하고 싶었던 큰 배우, 그렇게 진정한 인생을 사셨던 그 인생의 무대를 떠난 빈자리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이정표로 하여 무엇이 바른 삶인가를 지금 우리는 다시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