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잤다. 오늘은 즐거운 일요일이어서 온 가족이 늦잠을 즐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관리실의 마이크를 통해 왕왕왕왕 하고 방송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쐐애액 쐐애액 하는 소리가 내 늦잠을 방해했다.
부모님께 여쭈어 보니 아파트 주차장의 아스콘 공사를 하는 관계로, 주차된 차들을 빼라는 방송이라고 하셨다.
다른 날 공사를 해도 되고 조금만 늦게 해도 될 텐데 황금 같은 일요일 여덟시도 안 된 이른 이침에 나를 잠속에서 끄집어 낸 어른들께 심통이 나서‘ 어른들이라고 다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많은 것은 아니로군.’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잠은 깼고, 엄마와 함께 왕방산에 가기로 했다.
요즘 학교 가는 길에 또는 학교의 운동장에서, 복도에서 바람결에 묻어와 나를 취하게 하는 아카시아 향기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맡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 Mps를 챙겨서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신 엄마께서 “지연아, 산에 가면서 왜 그런 것을 가져가니? 산에서는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어야지.” 하셨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지난 이틀 동안 내린 비를 까맣게 머금고 있었고 낙엽들은 축축하게 젖어있어서 숲의 향기를 더 많이 맡을 수 있었다.
쭁쭁쭁쭁하는 새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하얀 찔레꽃이 피어있는 곳에 이르자 엄마께서 찔레를 꺾더니 어린 시절에 먹었던 간식(?)이었다고 하시며먹어 보라고 하셨다.
엄마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 엄마가 너만 할 때는 두메산골에서 자랐어.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야 했는데 산도 넘고 물도 건넜지. 아침에 도시락 갖고 학교에 가면 배가 고파서 한 시간 마치고 쉬는 시간이면 도시락의 반을 먹고, 둘째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다 먹어버려서 점심시간이 되면 먹을 밥이 없는 거야. 그때는 왜 그렇게 늘 배가 고팠는지...엄마가 학교 다닐 때는 급식으로 노란 옥수수 빵이나 과자 같은 것을 나눠줬었는데 엄마는 네 외할머니가 걸려서 그걸 하나도 먹지 못하고 집에 가져왔어. 그때는 마을에 가게가 없어서 사 먹고 싶어도 사먹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맛있는 간식도 먹지 못하고 집에서 일하고 계실 네 외할머니께 갖다 드리기 위해서 먹고 싶은 걸 꼭꼭 참았지. 할머니께 드리고, 잡수시는 걸 보면 침이 넘어갈까봐 얼른 도망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흘렀네. 요즘 할머니께서 당뇨병에 걸리셔서 맛있는 음식도 못 잡수시는데 ......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 스스로가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올 때면 배가 고파서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단다. 그래서 친구들과 산을 넘어 올 때면 찔레도 꺾어 먹고 새콤한 싱아도 꺾어먹고 삐비도 뽑아먹었단다.” 라고 말씀 하시며 이왕 옛 이야기 나왔으니 엄마가 옛날에 이때쯤 먹었던 음식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엄마랑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가득 가득 아카시아 꽃을 따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으며 난 40년 후에 내 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줘야 할지를 생각 해 봤다. 난 우리 부모님께 남과 다른 차별화된 효를 실천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다음에 내 딸에게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기특했노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단잠을 깨운 배려 심 없는 어른들이 나와 엄마의 즐거운 시간을 마련 해 준 것 같아서 새삼스럽게 감사하다.
오늘 산에서 따 온 아카시아 꽃은 쌀가루와 섞어서 떡을 만들어 주셨다. 진달래 화전처럼 예쁜 떡을 기대했던 나는 떡 모양에 실망했지만, 아카시아 향기가 나는 떡은 무척 맛있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아카시아 꽃 떡을 먹은 아이가 나 말고 또 있을까? 오늘 너무 행복하다. 이지연 포천신문 학생명예기자 (skfkgks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