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아빠는 전생에 왕과 왕비이고 난 아마도 공주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모님께서 이토록 고궁에 애착을 가질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부모님께, 난 육학년이고 이번이 나에게는 마지막 어린이 날임을 틈틈이 상기 시켜 드리며 이번 어린이 날 만은 나만 위한 날이길 바랬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번 어린이날에도 또 고궁에 가자고 하시더니 내 표정을 살피시며 “그럼 과학관에 갈까?” 하셨다.
해마다 어린이날에 고궁에 가면 여러 가지 기념행사가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체험도 하고 고궁 관람도 했지만 이제 난 눈 감고도 고궁들의 모습이 환하게 보이고 나에게 고궁을 안내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과학관? 늘 갈 때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돌아오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번 어린이날만큼은 좀 더 새로운 걸 원했다.
그래서 오늘 어린이날은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갈 어린이들이 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기념일이고 내가 고집 부릴 수 있는 마지막 어린이날임을 강조했더니 부모님께서는 “예~ 그러세요? 그럼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색동회에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한 운동의 일환인 것은 알고 계신가요, 지연 양? 그리고 온고지신의 뜻은요?” 하셨다. 내가졌다.
그래서 차라리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그동안 학교 시험과, 시험 후 스트레스를 푼다고 친구들과 노느라고 미뤄 뒀었던 한자 급수시험 공부를 해야 하므로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댔지만 마음속으로는 꼭 내 어린이날을 빼앗긴 것만 같아서 화가 났다.
공부를 하다가 잠시 산책을 하러 집을 나섰다. 집 근처에서는 재건축을 하려는 것인지 중장비 차가 타다다다다 어떤 건물을 허물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집에 가기위해 공사현장을 지나는 중이었다.
커다란 트럭이 내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데 갑자기 “뻥” 소리가 들리며 뭔가가 내 머리와 다리를 때렸다. 갑자기 눈앞에 노란별이 반짝 했다. 머리를 만져 보니 어느새 아기 주먹만 한 혹이 솟아났다. 머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어린이날에 화나는 마음도 아파서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께서 깜짝 놀라시며 “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어디? 다른 곳은 아픈데 없어? 괜찮아?......” 하시더니 현장에 가 보고 몸이 계속 안 좋은 것 같으면 병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공사장에는 세 명의 아저씨들이 일하고 계셨다. 엄마께서 “ 이곳에서 건축물 쓰레기 실은 차 나갔지요? 차에 포장을 치고 날라야지요. 아이가 다쳤잖아요.” 하며 큰 소리로 화를 내셨다.
아저씨들께서는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이가 다친 줄 몰랐습니다. 차 나갈 때 포장은 덮었는데요, 차 위에서 물건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요 조금 전에 폐기물을 실고 나가던 차가 도로에 굴러다니는 유리병을 바퀴로 밟았어요. 그래서 타이어가 펑크가 났고요, 먼저 깨져있었던 아스팔트 조각이 타이어가 펑크 나서 가라앉으며 튀었는데 아이가 맞은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받게 함께 가시지요.” 하셨다.
그러자 엄마는 “됐어요. 심하지 않으니 집에 가서 연고 바르고 쉬면 괜찮을 거에요.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또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봐 조심하라고 말씀 드리러 온 것뿐이에요.” 하셨다.
오늘 어린이날.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모두 함께 쉬는 법정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빠들은 공사현장에서 또는 각자의 일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데 난 괜한 투정을 부리고 있다고 “ 이놈아, 정신 차려.” 하고 하늘이 꿀밤을 때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