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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여는 세상=1]후불제 민주주의

통치자는 국민에게 법치주의를 말하면 안 된다.
홍을표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30일
우리 국민이 책 안 읽기는 소문 나 있다. 이웃 일본이나 유럽 등 선진국가에 비해 책을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국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본지는 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평소 책을 통해 우리사회 지식인들과 교감을 이루고 있는 홍을표 차의과학대학교 사무처장의 ‘책으로 여는 세상’을 연재하고자 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꼭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해 소개할 계획이다.(편집자주)

홍을표(차의과학대학교 사무처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지난 해 여름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항쟁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노래 헌법 제1조다. 왜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도 촛불 하나로 버티면서 그토록 그 노래를 외쳐 불러댔던가?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과 그 대리인인 통치자와의 계약이다. 계약당사자 중 갑(甲)은 국민이고 을(乙)은 통치자이다. 갑의 권리를 일정한 기간과 형식을 통해 을에게 위임한 것이다. 흔히 법치주의라고 할 때 법의 근본은 바로 이 헌법이다. 인간의 인권은 하늘에서부터 나온다는 천부인권설과,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주권재민 사상이 근대 헌법 정신의 핵심이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권과 국민주권에 대하여 그 권력의 책임을 부여받은 통치자는 헌법과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갑의 신분인 국민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권과 주권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국민은 하늘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지지만 위임받은 권력자는 계약조항인 헌법에 대하여 유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로크의 혁명론이나 맹자의 역성혁명론도 다 이것에 근거하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를 알고 덕으로 다스리는 성인군주가 나와 덕치(德治)를 행하면 이상적이겠지만 인류사회는 그런 이상사회를 한 번도 용납하지 않았다. 흔히 법치(法治)라는 말은 법으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다스리는 자[治者]가 총으로도 아니고 돈으로도 아니고 신앙으로도 아니고, 계약서 즉 헌법에 의하며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치는 치자[통치자]의 덕목이지 피치자의 덕목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주권자와 통치자간에 성립된 역전 현상(통치자가 오히려 주인인 국민을 억압하는)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현대적 통치이데올로기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로지 통치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권력자가 법치주의를 들먹인다면 그것은 헌법정신에 대한 무식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그것을 알면서도 국민들의 무지를 악용해 불법적인 통치를 감행하기 위한 간교한 수사법이다.

헌법 그것은 근대적 외피이다. 근대의 도입과 더불어 우리가 입는 양복처럼, 우리가 먹는 양약처럼 따라온 것이다. 그런데 그 외피는 우리의 국민적 생활양식을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외피가 되었다. 중세적 신민에서 근대적 시민으로 갱생하는 대변모를 가능케 하고 민주공화국을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외피인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헌법 정신에 맞는 근대적 몸을 만들기 위해 지난 60년간 민주주의 쟁취 운동을 해 온 것이다. 이제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제도화된 것 같다. 그런데 최근의 현상은 불행하게도 거꾸로 가고 있다. 유시민의 말대로 ‘문명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후불제민주주의’(2009, 돌베게)에서 헌법의 당위와 그 현상인 권력의 실재적 모습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만한 글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증명하는 것이겠으나, 현실은 그보다도 어둡다. 재산을 모아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그 재산을 날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난 60년간 이룩한 민주공화국의 재산이라도 잘못된 통치자에 의해 한순간 탕진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해결책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마음에 달렸다. 주권자인 국민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렸다. 현재의 국민의 마음을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국민들은 이미 민주주의의가 확보되었다고 생각하여 지난 대선에서는 이른바‘747공약’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만약 경제발전은 고사하고 이미 확보했었던 민주주의까지 탕진한다면 자신들이 만들었던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통치자는 국민에게 법치를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자기 스스로 헌법을 준수하면 된다. 헌법에는 분명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다.“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만일 통치자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면 이는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그 정권의 정당성은 사라지며, 통치자가 권력으로써 행복추구권을 막는다면 국민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헌법에 이미 성문화되어 있는 계약조건을 후불(後拂)로라도 이행하려는 노력에는 국민적 항쟁이 포함된다. 그럴 때 나타나는 통치자와 주권자인 국민 사이의 갈등과 탄압 그리고 희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바로 후불금인 것이다. 역사에는 에누리가 없다.
홍을표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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