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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270]

문정공(文貞公) 유전
김창종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30일
↑↑ 김창종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포천 출신 영의정만을 골라 벼슬길에 오른 호화로운 역정을 소개한 글을 읽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생각이 난다. 영의정을 지냈다고 하여 만고의 충신이며 청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과도 하지 않고 설사 등과를 하였더라도 미관 말직에서 오직 선비정신을 생명 같이 지키며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영재(英材)를 모아 가르친 역사적 인물이 죽어서는 서원에 배향되는 영광을 얻은 성현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으며 영의정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 말(馬), 저 말(馬) 갈아타고 변절을 밥먹듯이 하고 당리당략에 선봉에 서는가 하면 의리를 저버린 영의정이나 현대 고급 정상급 정객들이 개만도 못한 행각을 걸어 온 예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조선조 5백년 명재상은 세분뿐이었다고 역사는 쓰고 있다)

오늘 여기에 소개하는 유전 대감(1531년; 중종26년~1589년; 선조22년)이야 말로 어느 당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직 바른 선비의 길과 이도(吏道)를 걸었다는 점에서 그 인물됨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포천읍 자작리 왕방산 밑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동면 금주산에 묻힌 순수한 포천인이었다. 자는 극후(克厚) 호는 우복(愚伏), 본관은 문화(文化), 현감 예선(禮善)의 아들이다. 중종 7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 문과(別試 文科)에 급제하여 권지부 정자를 제수 받고 기주(記注)가 되었다.

학식과 필재가 뛰어나 춘추관에 들어가 의사(議事)를 맡아보았다.

그 후, 홍문관 정자, 부작, 박사, 수찬, 사간원 정언, 병조좌랑, 교리, 병조, 형조 정랑, 부응교, 사헌부 집의, 응교, 사간, 승정원 동부승지, 예조참판 겸 승문원 제학, 병조참판 겸 도총부 부총관, 사헌부 대사헌, 예조판서, 감사, 병조판서가 되었다.

선조13년 율곡 선생과 함께 윤원형, 이기 등 간사한 무리들을 숙청하는데 앞장섰다. 선조16년 한성부판윤, 18년 우의정, 21년 사은사(謝恩使)로 중국에 다녀와 좌의정 22년 영의정을 제수 받았다. 그 해 정여립의 난을 평정하고 평란공신 2등 시령부원군(始寧府院君)에 추봉되었다. 그야말로 수도 없이 많은 벼슬자리를 역임하면서도 어느 당파에 서서 사리사욕을 쫓지 않았으며 오직 국란 극복에 앞장섰으며, 간신배들을 숙청한 충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문정공(文貞公)이란 최고의 문관 시호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내각의 어려운 판서의 자리인 병조, 외교를 맡은 예조는 물론, 중국 외교의 중책인 사은사를 맡아 외교 무대에서도 큰 활약을 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향적산 아래에 묻혔다가 일동면 길명리 금주산 밑으로 이장하였다. 포천에서 출생, 고향 포천에 와서 잠든 지조 있는 선비이자, 충신이었던 유전님의 뜻을 기리는 행사가 기대된다.
김창종 기자 / 입력 : 2009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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