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어떤 소리가 처음으로 이 삼라만상을 깨웠을까.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을 운행하시던 소리일까, 세상의 광명을 불러오실 때 빛이 있으라 하시던 신의 목소리일까?
살랑대는 봄 아가씨 옷자락에 겨울이 윽물었던 어금니를 풀자 산에 면해 있는 뒤 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터를 잡고 나서 바로 해야 할 일을 미뤄놓았더니 게으른 자에게 내리는 깨우침이다. 봄이라도 비가 잦으면 곤란하다. 여름이 오기 전 장마를 대비해야 한다.
느티나무 외에는 볼 것 없는 마당에 계절을 불러들이는 것 또한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지인들 덕에 뒤 터에 조경석을 쌓고 구석구석에 조경수를 한 묶음씩 박았다. 내친 김에 예쁜 꽃모종을 구해 앞마당도 꾸며야겠다. 옥양목만큼이나 두꺼워진 햇살을 받으며 봄을 잡으러 간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송우리 저잣거리는 반평생 내게 덧입혀진 문명의 냄새가 조금 있어 한편 반갑기도 하다.
큰 쪽파다발을 트럭 가득 싣고 외장을 치는 아저씨를 뒤고 하고 길을 건너자 꽃집이다. 꽃씨를 사는 아줌마, 할아버지, 아저씨와 새 색시, 봄을 사느라 아우성이다. 아직 그 마음에 빗장을 열지 않은 이에게도 봄은 나비처럼 울타리를 넘는다. 꽃베고니아, 패랭이, 팬지, 시클라멘트, 앵초, 범부채, 메발톱꽃들! 들에 핀 야생화들이 인간의 탐욕으로 잡혀와 작은 비닐화분에 발목이 붙들려 팔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제일 깜찍한 계집애들을 골라 싸들고 나서자 어느덧 석양이다.
건너편 화장품가게에서 발라드풍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옆 집 가방가게에서는 어느 헤비메탈 그룹이 주변의 소리를 압도한다. 마침 사각의 틀을 얹은 작은 트럭 한 대 등장한다. 요정 지팡이를 든 아가씨 둘이 흔들리는 오픈카에 양쪽으로 등을 맞대고 서서 확성기를 들이대고 소리 지른다. 대형 사운드와 목쉰 스피커가 행인들의 귀를 찢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자 노래방 개업을 선전하는 차량이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조금 걸어가자 비닐풍선 허수아비가 바람 속으로 헛손질을 한다.
“--가슴에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랫말이 들리는데 여기도 노래방 개업장이다. 버스정류장 가까이 오자 어느 빵집에서“미쳤어”가 쿵쿵 울린다. 조금 있다 거리를 가로지르며 대형 철제 가방을 업은 똑같은 행색의 자동차 대열이 등장한다. 아이들 하교시간이라 중고생 넘치는 거리에 부킹이 확실하다고 선전하는 괴물들은 “---나이트클럽”이다.
모두 지엄한 삶의 현장 같지만 몰염치와 이기주의가 벼린 소리의 비수들이 번뜩이는 현장이다. 옆집에서 나오는 소리에 목을 따고 그 옆집은 그 옆집의 소리를 베고 그 옆집은 옆집의 소리를 찔러 내 소리를 키우고 있다. 공장, 공사장 혹은 특별현장에서는 소음 규제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도시의 거리에 상행위로 인한 소음 규제는 없는 것인가.
내 자본을 늘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거리와 행인, 사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행인들도 자신들의 달팽이관을 소음의 총포로부터 보호할 권리가 있다. 감히 자본주의를 들먹일 정도는 아닌 소자본의 행위들이지만 자본주의가 자유라는 미명의 방종과 만날 때 합성되는 것 극도의 이기주의다. 최소한의 양심과 사회적 룰이, 미풍양속이 증발한, 미쳐 가는 도시라면 할 수 없이 규제가 따라야 한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 이곳은 신의 거리다. 욕계에서 무욕계로 접어든다. 황새 한 쌍이 날아가며 끼룩거린다.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산길을 따라 오르자 그때서야 총포에 맞아 날아갔던 내 귀가 다시 와 박힌다. 살벌한 인위의 소리를 자연이 산뜻한 발자국으로 다가와 씻는다.
회원가입
기사쓰기
입력 : 2009년 04월 21일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