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하다는 생각이 들 때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그 같은 일에 참여(參與)하지도 말고 관여(關與)하지도 말라고 말씀 하신다. 잘못 참여하거나 관여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참여와 관여라는 말은 비슷하면서도 뉴앙스(nuance)가 다른 말이다. 참여라는 것은 어떤 일에 뛰어들어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적극적(積極的)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관여라는 것은 어떤 일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으나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소극적(消極的)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참여는 현장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다. 전면(前面)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주장(主張)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생각이 외부로 표출(表出)되는 것이다. 그 생각이 말[言語]도 되고 시위(示威)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이라 하는 것이다. 관여는 그게 아니다. 생각을 같이 하고 주장을 같이 하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것이다. 의사표시는 하되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 것이다.
참여에는 숙명적으로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뒤따른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해관계가 수반(隨伴)될 때 참여하게 된다. 이해관계가 뒤따르니 자연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여는 그렇지 않다. 관여는 이해관계보다는 당위성(當爲性)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의로운 일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될 때 관계하게 된다. 공감(共感)하고 공유[share]할 때 관계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 이해관계도 없이 왜 그 같은 일에 관여하느냐고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것이다. 이러니 자연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어떠한 일에 참여하거나 관여하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하라. 건성 건성하지 말고 심사숙고(深思熟考)하라.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생각하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별 생각 없이 불쑥 불쑥 말을 던지거나 참견부터 하지 마라.” 그리하면 시비(是非)에 휘말리거나 사건(事件)에 연루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싸움을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이 세던 약하던 무조건 달려들고 일본 사람들은 한 대 맞아보고 상대가 세면 무조건 무릎을 꿇고 중국 사람들은 미리 판단해서 상대가 자기보다 세면 도망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먼저 생각을 하라는 말이다. 생각을 잘하고 판단(判斷)을 잘하라는 말이다. 무조건 달려들지 말고 상황(狀況)을 잘 살피고 나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생각과 판단의 기준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탐심(貪心)이고 둘은 분심(忿心)이며 셋은 치심(癡心)이다. 먼저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이 가득 차 있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욕심이 판단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욕심이 가득하면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분심을 버려야 한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분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이 먼저 다친다. 화를 달래고 화를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화가 난다고 그 화를 그대로 발산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언성(言聲)을 높이지 말라 하는 것이고 흥분(興奮)부터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치심을 버려야 한다.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치기 어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서도 안 되고 자만(自滿)해서도 안 된다. 감성(感性)을 버리고 이성으로 대하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냉혈한(冷血漢)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따듯한 가슴을 지니되 차가운 머리로 판단하란 말이다.
비결(秘訣)은 간단하다. 나[我]를 버리고 마음[心]을 비우면 된다. 소(小)를 버리고 대(大)를 생각하면 된다.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생각하면 된다. 나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저절로 지혜(智慧)의 문이 열린다. 소를 버리고 대를 생각하면 저절로 갈 길[道]이 보인다. 사를 버리고 공을 생각하면 저절로 번영(繁榮)의 길이 보인다. 참여하고 관여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