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겨울을 난 개구리, 경칩이 지나고 어느 날 생명이 움트는 저 대지로 돌려보냈다. 지난 가을 화분을 들여놓을 때 따라 들어온 개구리다. 잘 가거라. 봄의 대표주자여! 지난해에 헤어졌던 동료들과 혹은 가족들과 만나거든 우주질서에 대한 진부한 토론은 관두고 포도송이 같은 다산으로 네 생명의 씨를 천지에 퍼뜨리거라. 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니 각별한 인사는 필요치 않아 돌아보지 말고 어서 가거라. 수수만년 전부터 본시 이곳은 너희들의 영토이었을 터이니---!
삼라만상이 아기손톱 같은 움을 트는 봄날에 저 호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고모루성 길을 걸어 호수까지 산책을 한다. 집에서 나서서 이십분 가량 걸어가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호수가 산을 베고 누워 있다. 나를 호위하는 검정개 한 마리 데리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언덕을 넘는다. 거위와 청둥오리 그리고 비오리들이 오늘 일정을 점검하다 첫 손님이 오는 기척을 느끼곤 지난 저녁에 쳤던 얇은 그물을 걷는다. 제 군함을 밀고 나가야 오늘이 열리는 물새의 영지에서 시선을 위로 올리면 비로소 먼 산위로 태양이 납빛 얼굴을 든다. 새벽을 밟고 마중 나온 이에게 최초의 신성을 발사하기 위해 태양이 큰 눈을 번쩍 뜨면 명상에 잠겨있는 숲의 어깨와 머리를 타고 넘던 새들이‘오늘’이라는 현수막을 물고 가 건너편 산 미루나무에 줄을 맨다. 그물이 걷힌 호수에는 은스푼보다 작은 물의 정령들이 숱하게 나와 바람의 잔등을 타고 물구슬을 실에 꿴다.
주인보다 시 짓기를 먼저 끝낸 경호원이 갈 길을 재촉하다 맘을 접고‘요’자 자세로 호수를 내려다 볼 즈음 산 너머 우리 마을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네 발 달린 검정 호위병은 주인 앞서 나가며 길 가에 나앉아 있는 건방진 까치를 쫓거나 깝죽대는 청설모에게 시비를 걸때도 있다. 국국대는 관악기를 싫어하는 주인의 성향을 알고 부탁한 일 없는 산비둘기의 연주를 제지하곤 한다. 주인의 산책길에만 끈에서 해방되는 호위병은 길과 길 양쪽으로 30~40미터 근방에 제 영역이라고 표시를 해대는가 하면 샅샅이 점검하며 혹시 있을 불순분자의 색출에 열심이다. 불순분자는 당연히 없는데 시대가 삼엄하다고 하나 쓰레기보다 더 비열한 양심들이 도처에 버려져 있다. 이곳을 걸어서 넘는 이는 저 주인처럼 운동을 하는 몇 사람뿐인데 널려진 것들은 폐타이어, 구멍 난 대형 고무함지, 못 쓰는 텔레비전, 육중한 가죽의자, 그리고 흰 땅강아지 같은 담배꽁초와 과자봉지 잡쓰레기들! 어느 자살자가 마시고 난 독이 든 병일까, 하고 보면 소주병들이다. 이는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의 소행일 것이 십중팔구다. 아아, 어느 산천에 닿아야 그림처럼 고운 수묵화 한 점 아니면 풍경화 한 점 만날 수 있을까?
내 나라 내 땅은 나의 영토이며 나의 정원이다. 등기부 등본에 이름 석 자 박지 않은 산도 호수도 모두 우리의 것, 당신의 것이다. 사들이지 않고도 당신의 발길이 닿는 곳이 당신의 동산이고 방문하는 곳이 내 후원이요 내 거실이다. 해가 뜨고 지고, 뻐꾸기 우짖는 당신의 정원에 쓰레기통 들고 와 비워야 되겠는가. 이곳의 주인은 본시 우리가 아니다. 옛날 옛적부터 딱따구리와 박새, 황조롱이의 터다. 노루와 고라니가 힘을 겨루는 곳이고 그들이 짝을 짓는 신성한 터다. 양심이 뺐다 꼈다 하는 휠터라면 얼마나 좋을까? 쓰레기 같은 양심을 빼어 이 청정한 신의 터, 저 높은 물푸레나무에 걸었다 충전이 끝난 후 갖다 끼울 수 있다면! 시간을 내어 저 쓰레기를 주우러 다녀야겠다. 홈리스 발싸개보다 못한 양심들 널린 산천에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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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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