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여인과 물은 불가분의 관계다. 15세기 보티첼리의 그림에서도 19세기의 화가 카바넬도 바다에서의‘비너스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 이는 물이라기보다는 아름다움은 곧 물거품이라는 신화적 해석에 근거하고 있지만 분명 美의 화신들이 물에서 탄생 혹은 부활을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에는 에게해와 맞닿아 있는‘나우폴리오’라는 곳이 있다. 이 샘에 들었다나오면 처녀가 된다고 하여 일전에 그리스에 갔던 길에 동행했던 여인들이 다투어 물을 끼얹고 나왔던 곳이다. 남성도 물론이지만 일상이라는 검은 베일에 덮힌 몸을 온천에 담그고 나와 채 마르지 않은 촉촉한 머리와 뺨이 발그레한 여인, 이 세상 무엇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으리. 김 서린 따끈한 온천에서 여인을 타고 넘었던 삶이라는 지엄한 낮과 밤의 살자국을 온전히 벗기고 나면 이는 신성한 미의 화신, 처녀지의 부활이라 불러도 충분하리라!
일찍이 대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그 설이 분분하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기울어진 해석은 납중독이라는 설이다. 문헌이나 영화에서도 이들의 술잔이나 그릇들이 대부분 납으로 만들어진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납은 비등점이 높지 않아 형상을 만들기에 아주 용이했으므로 연금술이 현대와 같지 않았던 시절에 있었을 법한 일이기도 하다. 폼페이우스나 이태리 여러 곳에서 발굴되는 당시 로마 시민들의 두개골에는 평균치의 8배가 넘는 납이 검출된다는 것으로 보아 일부 학계는 이 납중독의 원인을 유력시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다음으로 수세기를 점하고 있던 대 로마제국의 멸망원인설은 사치에 달한 로마제국의 국민적 목욕문화에 근거하고 있다. 로마의 황제들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욕장을 건설해 기증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맥맥히 남아 있는 대욕장이 바로 ‘카라칼라 대욕장’이다. 저 명상록으로 유명한 말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30년쯤 후에 집권한 안토니우스 카라칼라 황제에 의해 건축된 카라칼라 대욕장은 한 번에 이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런데 로마제국 멸망 원인을 들먹이며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의 사우나, 대중탕의 지나친 보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도처에 온천장과 대욕장, 찜질방이 지나치게 성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현실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세상 잡사를 잊고 지나간 시간의 때를 벗고 싶어하는 이유도 있겠으나 나는 오늘 여기서 그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물의 낭비다. 남탕은 어떤 광경일지 모르겠으나 여탕은 실로 진풍경이다. 여인들의 6할 정도가 물을 공연히 틀어놓고 제 볼일을 본다. 싸지도 않은 목욕비를 내고 들어왔으니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동안 쏟아지는 물은 내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애통할 일이다. 아니면 사우나 주인이 부자 되는 것을 시기한 개인적 시기심의 발동일까. 아기와 함께 들어온 젊은 엄마들은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물 쏟아지는 샤워기를 장난감 삼아 아이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는 교육적 관점에서도 상당히 우려되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세계 11% 안에 드는 물 부족 국가다. 대중탕의 주인이 물 값을 계산할 것이지만 물은 신이 지상에 내린 공동의 혈액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 혈액의 수혈이 되지 않아 동시대인이 죽어가고 있다. 이 혈액을 낭비한다면 이는 간접살인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온천장에서 처녀로 부활하는 비너스들이여! 생명을 수혈하는 여신으로 거듭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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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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