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창종 수필가 | | ⓒ (주)포천신문사 | 시림부원군(始林府院君) 이몽량(李夢亮)
성품은 마음가짐이 평온하였으며 스스로 처신함에는 청렴하고 검약하였다.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는 정성을 기울였고 일에 임하여는 꿋꿋하고 안색이 장엄하고 그 기운을 꺾을 수 없었다. 인륜(人倫)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한결같이 지극한 성품을 다하였다.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구제해주었고 혼례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어서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하였다.
이몽량은 조선시대 문신이며 포천에서 성장하여 가산면 금현리에 묘가 있는 백사 이항복 대감의 아버지이며 고려 말 명신이자 대학자 이재현의 후손이니 명문가 중의 명문 출신이다(연산5년~명종19년) 중종17년 생원 진사시에 합격, 중종23년 형 몽윤과 더불어 명경시에 급제하여 교서관에 소속된 능력 있는 선비였다.
예문관 검렬, 승정원 주서, 성균관 전적, 형조 예조 병조의 좌랑, 사간원 청원, 경성부 판관, 진하사 서장관, 한성부 서원, 중종의 빈전도감의 도정, 당상관, 나주목사, 승정원 동부승지, 위사공신 3등 광산군, 장예원 판결사, 사간원 대사간, 동지사, 도승지, 가선대부, 경상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한성부 우윤 좌윤, 대사간, 판결사, 경기도 관찰사, 대사헌, 병조 예조 참판, 도승지, 자헌대부, 한성판윤, 의정부좌참찬,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명종19년 향년 66세로 사망하기까지 지금으로 말하면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입법 사법 행정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대통령실장 등 행정 수장과 시 도지사, 감사원장, 중국특사(대사급) 외교관, 군, 법관 등과 서울특별시장 등을 역임한 장관급 관료였으며, 사망하자 명종 임금이 조회를 거두고 의례에 준하여 조문케하고 정헌공(定獻公)이란 시호와 시림부원군의 군호를 내릴만치 임금의 사랑을 끝까지 받았던 충신이었다.
그리고 신도비는 당대의 최고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쓰여졌으며 묘표 음기는 아들 이항복이 쓸만치 최고의 대우를 받은 인물이다.
우리는 목민관(牧民官)으로 있을 당시나, 중앙 각 부처 최고의 요직에 있을 당시에도 늘 학문에 입각한 도학정치를 제창하고 실천하였던 인물이란 점에서 주목하고 인물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포천 최고 명문가인 경주 이씨 문중은 조선조 유생으로 후에 자손들의 2대 영달로 좌찬성(종1품)으로 추증된 이예신(李禮臣)으로부터 포천 입향(抱川 入鄕) 세조(世祖)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증 이조판서 성무(成茂)의 자인 유생 이예신은 일찍이 포천현의 남쪽 20리 화산(花山 : 지금의 가산) 추곡(楸谷)에 자신의 묘자리를 정하고 나의 자손 2대가 연달아 영달하리라라고 예언하였는데 과연 그의 후손인 아들 이몽량과 손자 이항복이 태어났다. 그래서 좌찬성(종1품 : 부총리급)에 추증되는 영광을 입는다. 예부터 포천 땅은 양택(陽宅)이나 명당 아닌 곳이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