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꿈결 속에 들리는 풍경소리에 눈을 떴다. 몇 시나 됐을까? 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다지 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 앉아 한켠에 놓여있는 작은 호롱불을 켰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대웅전 부처님 전을 향해 고요히 합장을 하며 무한한 평온 속으로 빠진다. 그리고 속세의 모든 인연들에게 자비의 연정을 보내며 무념무아에 잠겨있던 그녀는 종소리에 일어나 뜰로 나섰다. 볼을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다.
‘아! 그렇구나 봄이 오고 있구나...!’그러고 보니 계곡의 물소리가 얼음장 속에서 마치 다기에 떨어지는 청아한 찻 소리를 내는 듯하다. 그녀는 계곡 오솔길로 들어섰다. 산사의 이른 아침 햇살이 마른나무가지에 머물러 있어서 보니 어느새 복수초는 지고 있고 진달래 꽃망울이 통통히 물이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온 몸이 부풀어오르는 듯한 형용 할 수 없는 무한한 생명력의 환희를 느끼며 속세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친다.
지금까지 마음을 비우고 다스리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을 뿐 비워지지도 버려지지도 씻겨 지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계절이 윤회하듯이 가슴속의 멍을 그렇게 윤회시키고 있었을 뿐이었나.
‘이제는 잊었다고 아마도 치유됐다고 자신에게 수 없이 다짐하고 체념했을 뿐 결코 그를 향한 애모의 불씨는 심연 깊은 곳에 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친다. 말랐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쭉 흐르며 그가 다가온다. 갖가지의 모습으로 언제나 그리움의 끝은 그의 내음이다.
아아 보고싶다. 죽을 만큼 보고싶다. 그래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가 부딪기며 잊자. 가슴에 새로운 희망을 잉태시키며 살자.
막상 산사를 내려가 그와 같은 공기를 호흡한다는 자체부터가 너무 자신을 힘들게 하겠지만 이곳에 그의 모든 걸 묻어두고 떠나자, 산바람에 날려보내고 계곡 물에 흘려보내고 그래도 찌꺼기가 남으면 관음보살님 가슴에 남겨 두고 가지 뭐.
그녀는 핸드폰을 켜 그간 그가 보내온 문자를 다시 본다. 이미 그 글들은 그녀의 뇌리에 박혀 있지만 그의 눈망울을 응시하듯 다시 들여다본다.
“뭐 하는지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 건강조심 나의 동반자여! 보고싶다.”“눈이 꽤 오네 이 눈이 되어 당신가슴에 떨어지고 싶다 잘 자”“차례모시고 당신 생각 많이 했어 떡국은 먹었겠지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리고 당신 볼 수 있기를 기원해”“술 많이 취했어 마시면 마실수록 당신 생각나 이 깜깜함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 잘 자”“분명한 건 당신을 아직도 죽도록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거야”
그녀는 모든 문자를 모질게 지웠다. 그리고 아주 소중히 마지막 입맞춤을 하며 두 손에 모았다. 순간 반짝하며 눈물방울이 핸드폰에서 반사되자 그녀는 힘껏 허공을 향해 던졌다.
‘안녕 마이 리베, 신이 허락한 당신과 나의 시간은 여기까지인가 봐. 하지만 태양이 사라질 때까지 은하가 되어 우리사랑 영원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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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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