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 역사 교과서 3·1운동 단원의 삽화에는 3·1운동이 봉기한 곳이 그려져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내 고향 포천은 3·1운동의 만세 운동 봉기 지역에서 빠져 있어 마치 포천의 조상들은 3·1운동에 대해 무관심한 지역이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어 섭섭했던 생각이 난다.
최근 포천문화원(당시 원장 최종규)에서 편찬한 포천군지나 포천의 독립운동사(원판, 재발행판 : 포천문화원 및 포천시)를 통해 다른 곳 못지 않게 기미년(1919년) 3월1일 3·1만세 운동 시에 내 고향에도 만세운동에 참여 민족대표(이종일, 박동완, 권동진)로도 적극 참여한 어른이 있는가 하면 축석령을 비롯하여 신북면, 영중면, 영북면 등에서 열화(熱火)같이 일어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내 고향 포천도 다른 고장 못지 않은 3·1독립정신이 투철한 고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815광복 후, 포천감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던 정춘수 목사도 33인 중 한 분으로 3·1운동 당시는 기독교계를 대표하여 3·1운동에 적극 참 선두(先頭)에 서셨던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1941년∼1945년 5년 간 국민총력조선연맹(문화위원), 조선임전보국단(평의원), 조선전시종교보국회(이사) 등 친일 단체에 적극 가담한 정춘수 목사는 8·15광복 후 변절한 독립운동가로 낙인이 찍혀 오늘날까지도 3·1운동 기념물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고 친일파 99인(1993 돌베게 발행, 반민족문제연구소 편찬)에 수록되는 모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포천출신 33인 중, 세분은 광복의 날까지 절의(節義)를 굳게 지킨 위대한 독립지사였다.
독립만세운동의 선도자였던 소흘읍의 안흥걸님, 신북면의 최학돌님, 조계식님, 영중면의 유중식님, 정수환님, 함병현님, 소흘읍의 이이만님, 기산면의 이종원님, 가산면 정교마을 강지형님, 방축리 이규채님, 감암리 최석휴님, 그리고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던 이동면의 김마리아, 안희경, 안옥자님 등은 여성 독립운동가였다.
우리는 조국이 광복되고 독립을 하고 세계 10대 강국으로 선진국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 모든 영광이 모두 3·1독립만세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고 열화(熱火)와 같은 절의(節義)로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독립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들의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8·15광복 후 내 고향 포천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식민지 교육을 받고 왜놈 경찰 간부가 되어 지서장을 역임한 사람이 면장, 군수를 임명 받는가하면 일제에 아부하여 면장을 역임한 사람, 헌병보조원, 헌병오장(지금의 부사관) 등을 지낸 사람들이 출세하였으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우리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3·1 독립공원을 건립하고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교육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