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긍심(自矜心)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지는 마음’이다. 자존심(自尊心)이라는 말도 있다.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의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긍심(自矜心)이나 자존심(自尊心)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어떻게 하면 이런 자긍심(自矜心)이나 자존심(自尊心)을 갖고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인가? 비록 영화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약간의 답을 제공해 주고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혁명적인 학교 선생님 존 키팅은 용기 있는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이다. 로빈 윌리암스가 열연한 이 감동적인 영화에서 존 키팅 선생님은 전통적인 기숙학교에 다니는 잘 길들여진 부유층 학생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무감각한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그들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변화시켰다.
존 키팅 선생님이 지적한 대로 사춘기의 이 학생들은 벌써부터 꿈과 야망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들은 부모가 만든 계획표에 따라, 그리고 부모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에 따라 기계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 각자가 의사나 변호사나 은행가가 되는 인생 설계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부모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 무미 건조하고 삭막한 친구들은 자신들의 가슴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영화 앞 장면에서 키팅 선생은 소년들을 데리고 학교의 로비로 내려가 트로피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개교 초기의 졸업생들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 사진들을 봐라.”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이 젊은이들은 한때 너희들과 똑같은 불길을 눈동자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폭풍과 같은 힘으로 이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인생을 멋진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70년 전의 일이다. 이제 그들은 모두 죽었고, 무덤에는 데이지 꽃만 자라고 있다. 그들 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진정으로 실현했을까?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세웠던 야망을 성취했을까? 그러고 나서 키팅 선생은 이 부유층 아이들에게 몸을 기울이면서 이렇게 큰 소리로 속삭였다.
“카르페 디엠! 이 순간을 붙잡아라!”
처음에 학생들은 이 기이한 선생을 이해 할 수 없어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그가 하는 말들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차츰 키팅 선생을 숭배하게 되었다. 그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본래 갖고 있던 희망을 되찾게 해 준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건네 줄 생일 카드를 갖고 다닌다. 그 생일 카드는 자신의 감정의 표현이며, 살아 있음의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꺼내서 건네주지 못하고 소매 속에 감추고만 있다.
웨인 다이어는 “어린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좋게 생각할수록 여러 분야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 스스로 인생을 더 즐거운 것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반추해 본다. 학생들에게 자긍심(自矜心)이나 자존심(自尊心)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막대한데 정작 교육의 결과로 산출되는 결과물을 보면 아직도 갑론을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보니 흔쾌하게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즉, 사회적인 합의에 의한 교육결과물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의 대상은 학생이어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주체들에게 자긍심(自矜心)이나 자존심(自尊心)을 심어 주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 자꾸 웨인 다이어가 말했던 “어린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좋게 생각할수록 여러 분야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 스스로 인생을 더 즐거운 것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새 학기 학교 경영계획을 구상하는데 뇌리를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