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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263)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김창종 기자 / 입력 : 2009년 02월 28일
↑↑ 김창종
수필가, 본지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한국 특산종, 야생화이며 산소 곁에 피는 꽃입니다. 한국 전역에 분포되어 자생합니다. 미나리 아재비과의 다년생, 초본류이며 내 조국 어느 곳에나 산과 들 양지쪽에 삽니다. 다년생, 식물로 4~5월이 꽃 피는 시기이고 꽃이 져도 계속 자라고 할미꽃은 흰 수염 같은 씨 털이 나서 얻어진 이름이다. 동두할미, 노고초, 호왕사자, 나하초, 주리꽃, 하라비고장, 할미씨까비 등의 속명이 있습니다.

옛 날, 어느 마을에 부자 할머니가 손녀 둘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큰 손녀는 욕심이 많고 심술궂어서 작은 손녀를 일찍 멀리 사는 못난 총각에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작은 년아, 아무 걱정 말고 시집가서 잘 살거라. 할머니는 내가 잘 보살펴 드릴 것이니....
그래서 작은 년이는 큰 년이의 말만 믿고 할머니를 큰 년이에게 부탁하고 멀리 멀리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작은 년이의 꿈속에서 할머니가 나타나 울고불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 할머니 댁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큰 년이는 작은 년이를 멀리 시집보내고는 할머니 재산을 탕진하고 할머니마저도 정성껏 모시지 않고 늙은 할머니를 구박하고 괄시하였습니다. 할머니 꿈에도 작은 년이가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보고프다고 울고불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큰 년이 몰래 집을 나와 작은 년이가 시집 간 길을 따라서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허리를 두드리며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힘은 떨어지고 길은 멀어 눈물을 흘리며 어느 고개에 이르러 마침 할머니를 찾아오던 작은 년이와 만나 그리운 눈물의 상봉을 하였건만 때는 늦어 고갯마루에서 작은 년이의 품에 안긴 채 할머니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년이는 할머니를 양지 바른 언덕에 묻어 드리고 산신령님께 그동안 큰 년이의 죄상을 고하고 할머니의 명복을 빌며 할머니 묘 곁에다, 풀 묘막을 짓고 3년 상을 지냈습니다. 3년이 되던 어느 해 봄, 할머니 무덤 위에는 할미꽃이 100송이나 피고 흰(수염)머리 같은 씨가 맺혀 작은 년이의 머리 위에 날아 다녔습니다.

작은 년이의 3년상 소식을 들은 고을 원님은 나랏님(임금)께 고하여 큰 상과 재산을 내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큰 년이는 죄 값을 받아 원두막에서 자다가 벼락을 맞고 장맛비에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그 후, 효자 효녀를 둔 묘소에는 할머니 머리를 닮은 할머니 꽃이 핀다고 합니다. (전국단위 농어촌에 전한다.)

할미꽃 꽃가루와 뿌리에는 독성이 강해 조심해야 하며 옛 재래식 변소 소독용으로 사용되었다. 맛이 쓴 약초이지만 뇌종양, 암 치료용이고 두통, 복통, 이질, 심장병 뇌질환 등 많은 곳에 활용되는 신비한 약재로 내 고향 포천 효자의 무덤가에 올해도 만발합니다.
김창종 기자 / 입력 : 2009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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