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임(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정년(停年)을 맞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나면 요즘 어떻게 소일(消日)하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뚜렷이 할 일이 없어 나날을 그저 흘려보내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이다. 자세히 주위를 둘러보면 정년을 맞고도 소일하지 않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소일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있다. 석음(惜陰)이다.
석음이란 세월이 헛되이 지나감을 애석하게 여겨 시간을 아껴 소중히 보낸다는 말이다. 석음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하고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는 말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촌음이라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촌음(寸陰)이란 잠깐이란 뜻이다. 순간이란 뜻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순간순간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이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느낄 뿐이다. 그것을 시각화(視覺化)시켜 촌음이라 한 것이다. 촌음이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하나의 단위(單位)일 뿐이다. 밤낮으로 흐르는 시간의 단위를 ‘일촌광음’이라 한 것이다.
60에 정년을 맞은 어떤 사람이 그날그날을 할 일 없이 지내다보니 30년을 허송세월(虛送歲月) 했다고 한다. 30년을 더 살 줄 알았다면 무언가 할 것을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내 얘기다. 그래서 인생을 3기로 나누어 설계(設計)하라고 경험자들은 말한다. 제1기는 배움의 시기, 제2기는 활동의 시기, 제3기는 봉사의 시기로 계획(計劃)을 짜라는 것이다. 정년을 했다고 소일하지 말고 새로운 30년을 위해 무언가 계획을 세워 추진(推進)하라는 것이다. 소일하지 말고 석음하라는 말이다.
정년 후 3년은 30년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년 후의 시간이 소중하고 값지다는 말이다. 그 시간을 소일로 보내느냐 석음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人生)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정년 후의 생활을 더 바쁘게 보내야 하는 이유이다. 정년 후의 생활을 더 보람 있게 보내야 하는 이유이다. 할 일이 없다고 변명하고 핑계 대서는 안 된다.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하고 무언가 계획을 세워 실천(實踐)에 옮겨야 한다.
석음하는 사람들의 첫째 덕목은 근면(勤勉)함이다. 부지런함이다. 잠시도 시간을 허비(虛費)하지 않는다. 허송세월하지 않는다. 둘째 덕목은 절제(節制)함이다. 절약(節約)하고 절제한다. 낭비(浪費)하지 않고 허비하지 않는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쓴다. 셋째 덕목은 효율(效率)이다. 하나만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혼자 하지 않는다. 더불어 하고 동시에 한다.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넷째 덕목은 봉사(奉仕)다.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이다.
할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고 봉사(奉仕)에 눈떠 보라. 할 일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봉사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흘러넘쳐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봉사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대가(代價)가 없다고 푸념하지 말자. 가면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질량불변(質量不變)의 법칙(法則)’이 작용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 보아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당대(當代)만을 생각하지 말자. 당대에 모든 것을 받으려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고 생각이 멈추는 것이다. 당대에 모든 것을 받으려 하니까 기여입학제(寄與入學制)도 안 되는 것이고 적선(積善)도 안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하는 것을 우리는 왜 못 하는가? 당대에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당대에 받으려 하니까 기여입학제도 안 되는 것이고 적선도 안 되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자. 그리고 봉사활동으로 석음하는 삶을 살자. 촌음을 아껴 보람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자. 설거지물까지 깨끗이 마시는 탁발(托鉢)에서 그 정신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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