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사진, 대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사람이 되어 압제를 받아 자유를 잃게 되면 하늘이 주신 사람의 직분을 지키지 못함 이어늘, 하물며 사람 사이에 여자 되어 남자의 압제를 받아 자유를 빼앗기면 어찌 희한코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의 권리를 스스로 버림이 아니라 하리요.……”
자유종의 첫 구문의 일부이다. 이는 소설의 제목‘자유종’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즉‘自由鍾’은‘자유를 울리는 종’이였다. 여기에서 대상의 폭을 좁혀 본다면 ‘여성의 자유를 울리는 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소설은 여자들로 인해 어떤 자유를 말하고 그 자유를 통해 어떤 종을 울리려고 하는 것일까.
소설은 이매경 부인의 생일잔치에 모인 네 여자의 토론으로 이뤄진 이야기이다. 이매경 부인의 생일잔치에 모인 신설현, 홍국란, 강금운은 신설현의 토론회 제의로 잔치에 취하고 배부름이 아닌 현 시대와 민족을 직시하는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여자로서 자유의 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학문이 필요하며 더불어 여성의 교육과 여성의 자리의 필요성, 국문과 한문의 쓰임, 바르지 못한 관혼상제, 자식을 기르는 방법, 자식의 공물론 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네 인물은 각 주장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고 예시를 들어 말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 비교 하기도하고 인물(맹자의 모친)을 예로 들기도 하며 책(‘비유요지’)을 들어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네 인물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토론 형식으로 이뤄진 전개 속에서는 일반적인 소설에서 보던 인물의 갈등, 사건은 볼 수가 없다.
네 인물은 오로지 토론의 형식으로 여성으로서 자유의 종을 울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주장한다. 소설의 허구적인 사실, 사건에 대한 갈등이 아닌 현실의 문제의식, 바른 인식 등에 대해 토론하는 정치적인 요소를 띠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예술적, 문학적 기능을 하는 소설의 역할을 계몽의식이 깊이 뿌리박힌 소설로 많은 여성들에게 각성시키려는 역할로 바꿔 놓았다. 소설의 단순한 구조와 입체적이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 소설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누구보다 정확하게 사회의 모순과 제도를 꼬집으면서 여성으로서 강한 비판의식과 해결방안을 내세우는 모습은 돋보인다.
이렇게 강하게 개혁하려는 모습이 이 소설을 존재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당시 현실에서 여성들만의 토론회를 들어 진정한 여성의 자유의 종을 울리는 방법을 주장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현실에 대해 바른 인식을 했을 때 비로소 바르고 강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속에서 진정한 여성의 자유종을 울릴 수 있는 길이 나오는 것이다. 소설에서 네 인물들은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현 시대에 있는 여성들에게까지 손을 뻗어 여성으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 많이 보인다.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변화 중 하나는 여성의 모습일 것이다. 누군가의 뒷바라지만 해야 했고 학문이나 정치, 사회에 대해 무지했던 여성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 정치계, 교육계, 언론계 등 어느 하나에도 손을 뻗지 않는 곳이 없다. 또 이런 모습은 더 이상 낯선 나라의 일만으로 느껴지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하나의 자유라는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자유종’에서 말한 것처럼 더 이상 여자는 ‘금수’가 아닌 것이다. 사람의 권리를 찾는 것이다.
소설이 끝을 향해 갈 때, 네 인물들이 크나 작으나 간밤에 꾼 꿈이 나온다. 그 꿈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 대한제국의 개명, 대한제국의 독립, 대한제국의 안녕’이다. 결코 작지 않는 이 꿈은 네 주인공들의 이상향이자 한 민족의 염원이기도 하다. 여성으로서의 이상만으로 끝내지 않고 남녀노소를 불문한 이상향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더 큰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자유의 종은 여성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자유의 종을 울리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당시 사회에서 약자의 편에 속하던 여자의 편에 들어 말하면서 당시에 천한 자,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인물들에게 강하게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실천해야 할 수 있는 혹은 실천해야 만 할 개혁임을 많은 이들에게 각성시키고 싶은 것이 이해조의 외침이 아닐까.
더 이상 우리는 꼬꼬댁, 끼익 하는 작은 울타리 속 금수가 아니다. 누구나 배우고 깨우치며 변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다. 작은 울타리에서 나와 더 큰 세상을 내다보고 스스로가 세계를 이끌 가능성이 있는 존재인 것이다. 소설에 나와 있는 현실은 매우 작다. 학문을 배우고 세계를 품는데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 방법 또한 몰랐다. 과거의 작은 세계에서 박차고 올라오려는 여성들의 모습은 현재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는 변화에 오르게 하는 불씨를 당기는 일이 되었다. 바로 이 소설 또한 불씨를 당기는 강한 힘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조금 더 큰 세계를 향한 자유의 종이 우리나라에서 울리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