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송년회에서

용경자(주부명예기자단 감사)

많은 모임에서 송년회가 한창다. 고향친구부터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 동창회모임.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임.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이웃들의 모임. 취미활동 동호회 모임 등등 그 내용이 다양합니다. 음주와 가무로 심신이 피곤하지만 반가운 얼굴과 쌓인 정 때문에 발길이 멈추질 않습니다.

토요일 저녁 부부동반 고향친목회 송년모임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도착하는 친구들은 반가움에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며 맛난 음식과 술로 분위기가 익어갑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계속 투덜거립니다. 모임에 대한 불만과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친구를 흉보기 시작했습니다. 슬그머니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잠시 후 돌아와 보니 또 다른 회원을 붙들고 흉을 보다가 급기야 부부의 말다툼으로 이어지니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불만으로 퉁퉁 부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 표정... 눈에 띠는 화장과 의상으로 관심 끌고 자기주장을 남에게 인정받으려 계속 말을 하는 그녀에게서 난 기억 속의 한 여자를 떠올립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 새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한 어린 시절의 갈증, 시집가는 날에도 속옷 한 벌 사 입지 못한 서러움, 어려서 소풍가는 날에 찐 계란과 사이다가 먹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졸라대다가 울고 갔던 아픈 기억, 돈을 벌기 위해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봉제기술을 배웠고, 첫 번째 신랑이 일찍 세상을 떠나 다시 만난 남자가 무능력해서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하는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기가 죽어 있었던 그녀는 아줌마들 셋만 모이면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에게 한없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그녀 곁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외로움에 자기 말을 들어 줄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지만 친구들이 자기 말을 인정하지 않거나 약속을 어기면 유난히 화를 많이 내곤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멋쟁이지만 그녀의 가슴은 상처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 상처의 통증이 아리고 쓰릴 때 쏟아내는 신음소리가 바로 불만이요, 미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조금씩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 순간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지난날의 상처가 내는 신음소리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편안하게 들어줄 수 있는 말 한마디가 나 홀로 민감하게 받아들여 화가 난다면 내 속에 아물지 못한 상처가 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화를 내기 전에, 누군가가 미워지려 할 때 먼저 내 마음속의 상처가 내는 소리를 한번 들어 본다면 굳이 친구를 찾지 않아도 내 가슴속에 선한 친구하나가 항상 웃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2008년 쥐띠 해가 저물어가고 2009년 듬직한 소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 한해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는 모임이 한창입니다. 불우이웃돕기 송년회, 가족과 함께 보내기, 1차에서 9시까지만 하자는 119모임 등. 아마도 어려운 경기상황을 고려한 새로운 모습인 듯합니다. 어려울수록 그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울 줄 알기에 사람은 지혜롭고 아름다우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