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목(德目)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안목(眼目)이라는 말도 있다. 덕목이라고 할 때에 목(目)은 목차(目次) 같은 것에서 보듯이 하나의 아이템(item)을 말하는 것이고 안목이라고 할 때에 목(目)은 눈높이[eye level]를 말하는 것이다. 정도[degree]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덕(德)은 근로(勤勞)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안목(眼目)은 스터디(study)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공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스터디하고 연구(硏究)해야 나름대로 자신의 안목을 높여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높여갈 수 있는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알지 못하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意味)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부해야 하고 설명(說明)을 들어야 한다. 외국 여행을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떠했는가? 낯선 나라 낯선 문물(文物)이 한눈에 들어오던가?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아! 공부 좀 하고 올 걸...” 하고 후회도 했을 것이다. 알고 보면 그만큼 재미도 있었을 테고 얻는 것도 많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공부하고 안목을 높여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지식(知識)을 넓혀 가는 것이다. 연구한다는 것은 지식체계(知識體系)를 쌓아나가는 것이다. 축적(蓄積)된 지식체계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다. 대화(對話)를 하는 것도, 논쟁(論爭)을 벌이는 것도, 상대를 설득(說得)하는 것도 모두 축적된 지식체계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문학(文學)을 이야기하고 역사(歷史)사를 이야기하고 예술(藝術)과 철학(哲學)을 이야기 할 때도 축적된 지식체계가 받쳐줘야 빛나는 것이다. 공부는 책[book]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work]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통한 공부가 와이(why)에 대한 공부라면 일을 통한 공부는 하우 투(how to)에 대한 공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안목을 높이려면 하우 투[方法] 보다 와이[原因]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물론 하우 투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한다. 상호보완(相互補完)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우 투에 대한 공부가 방법[method]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와이에 대한 공부는 생각[thinking]을 키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thinking power]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래서 안목을 높이려면 하우 투 보다 와이에 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것이다. 안목은 수준이다. 기준이다. 판단기준(判斷基準)이고 평가기준(評價基準)이다. 사물을 판단하고 미(美)를 평가하고 가치(價値)를 평가하는 것이다. 판단기준이 높고 평가기준이 높은 사람을 볼 때 안목이 높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안목은 그냥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쏘리티(authority)를 향해 매진할 때 높아지는 것이고 권위(權威)를 지킬 때 빛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지식체계를 업그레이드(up grade)시키고 업데이트(up date)해야 만이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남이 잠잘 때 밭을 깊이 갈아야 하는 이유이고 밤새워가며 바둑돌을 굴려야 하는 이유이다. 덕목의 시발점은 근로(勤勞)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야 덕(德)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덕은 베푸는 것이다. 그것도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다. 조건을 달면 그것은 이미 덕이 아니다. 거래일 뿐이다. 덕은 도와주는 것이다. 협조(協助)하는 것이다. 조건 없이 베풀면 그들이 도와준다. 협조한다. 그들이 도와주고 협조할 때 빛나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덕은 선(善)과 통하는 것이다. 덕을 베푼다는 것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이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란 말이 소중한 이유이다. 안목과 덕목은 노력(努力)의 산물이다. 근로(勤勞)의 산물이다. 그리고 심성(心性)의 산물이다. 착하고 선한 심성의 산물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