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정춘옥(사진·주부명예기자단 영중면지부장)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밤. 애 아빠와 트러블에 참다 못한 나는 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평소에 과묵하고 말없는 둘째딸 연지가 가슴에 조그만 담요를 안고 나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내게 건네 주었다.

차를 몰고 나온 나는 고양시에 사는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두어 시간 여기저기를 다니다보니 벌써 자정이 넘어서고 있었다. 오빠네 집을 가자니 낼모레 백세를 바라보시는 친청 아버지 걱정이 맘에 걸리고 친구네 집을 가자니 거리도 멀고 자존심도 상하고 여자는 집을 나오면 어찌 이리 갈 데가 없을까?

나만 그런 것일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할 수 없이 가게로 돌아와 154cm 작은 키가 간신히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조그만 평상 위에 전기판넬 스위치를 올리고 작은 딸이 건네준 담요를 덮고 새우잠을 잤다. 그런 시간들이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신문사에서 임원회의와 특강이 있다는 메세지가 들어왔다.

그 날 아침 남편이 출근한 뒤에 아이들의 아침 등굣길을 도와주러 집엘 들렀는데 초등학교 4학년 막내딸 보라가 한 장의 편지를 나에게 건네주며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엄마가 저의 시야에서 안보이면 세상이 무섭다고 보라가 엄마를 볼 수 있는 곳에 있으라며 사랑한다는 하트를 빨강색 크레용으로 크게 색칠을 하고 1자에서 0이 수없이 들어가 셀 수도 없는 액수의 수표를 그려 “엄마 부자 되세요” 하는 등등의 내용들이 A4용지 앞뒤로 빼곡하게 적혀져 있었다.

그 편지를 읽고 나니 어제 원룸을 보러 다닌 나의 행동이 너무 무책임하지 않았나. 엄마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어린 딸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신문사 특강이 있던 날 양주승 자문위원님의 특강 내용은“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면 기본이 충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내용과 “사회의 모든 관계는 곧 믿음이다.”,“자녀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부모가 되어라”, “부모가 자식을 축복하는 가정은 자녀가 꼭 성공을 할 수 있다.”라는 불교, 유교, 기독교의 기본사상을 바탕으로 강의를 해주셨다. 사회의 모든 관계가 믿음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열 달 배 앓아 낳은 자식과 검은머리 파뿌리 되자고 맹세했던 부부가 꾸려나가는 가정은 더 말할 나위 있으랴......

저의 직장생활도 버거울 텐데 엄마의 빈자리를 말없이 메워주면서 고1 둘째 동생과 초등4년 막내 동생까지 묵묵히 챙겨주며 살림까지 도맡은 큰딸 은지, 또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여 평균 13점이나 올린 언제나 당당하고 당차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래서 더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바쁜 둘째딸 연지, 내 나이 마흔 둘에 낳은 늦둥이 보라, 항상 애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더욱더 안쓰러웠는데 엄마의 생각을 일깨워주고 엄마와 통화하느라 한 달 동안 써야할 휴대전화 통화를 일주일만에 다 써버린, 그래서 1633콜렉트콜로 전화하는 사랑스런 막내 보라.

나에겐 이렇게 든든하고, 당차고, 사랑스런 세 딸이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이렇게 환해 보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