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몸이 무겁습니다. 새벽 두시부터 시작되는 하루는 오후 4~5시쯤 되면 지치게 되죠.피곤한 몸을 이끌고 동네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싶어서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옆자리에 계신 나이 드신 두 분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5~60대의 두 아주머니가 다정스레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으시며, 서로 등을 밀어주시고 발까지 씻겨주시는 것이 보통 사이 같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모녀지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고..... 친척인가? 아니면 언니, 동생 사이? 그런데 전혀 닮은 모습은 아니고....’의아해하며 저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그쪽으로 쏠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힐끗힐끗 그분들을 바라보는 것이었어요.
그 분들은 그런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을 소중하게 닦아주시고 챙겨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욕을 다 끝낸 후 탈의실에 나와 보니 그 분들이 마주 앉아 서로 옷을 챙겨주시며 다정히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어보았죠.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그러자 조금 젊으신 아주머니가“쉰 여섯 이예요.”“옆에 계신 분은 요?”“예순 다섯이요.”나이 차이가 너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여 어떻게 된 관계인지 더욱 궁금했습니다.
“그럼.... 모녀지간은 아닐테고....”제가 말꼬리를 흐리자 두 분 아주머니는 제 생각을 눈치 채고 빙그레 웃으시며, “고부지간, 시어머니와 며느리예요.”하시는 겁니다.
“어머나... 그러세요?”제가 놀라워하자,“남편이 죽고 자식들도 다 컸다고 떠나서, 이젠 이렇게 우리 둘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요.”하시는 겁니다.
‘이런 만남도 있구나!’참 기막힌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고부지간이라고 하면 엄청 어려운 관계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정말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저희 시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제 시어머니는 참 무섭고 어려운 분이셨습니다. 저와 남편의 결혼을 반대하셨던 시어머니는, 스물 여덟 젊은 나이에 시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시며 제 남편과 시누이를 키워내신 분이라 잔정이 없고 엄하시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생각납니다. 명절 전날, 저는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를 찾아뵙게 됩니다. 제가 가는 날이면, 시어머니는 제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어머니께서 직접 담그신 된장으로, 북어대가리를 넣고 끓여주시는 된장찌개는 지금 생각해도 침이 넘어갈 만큼 맛이 있었습니다. 너무 맛있다고 잘 먹는 저를 바라보며 흐뭇해하시던 시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늦은 저녁 제사음식 준비를 끝내놓고 함께 자리에 누워 TV를 보는데 가수 나훈아가 노래를 하기에 제가“어머니, 사람들이요, 빈나 아빠더러 나훈아 닮았다고 그러는데 제가 볼 때는 우리 빈나 아빠가 더 잘생긴 것 같아요. 빈나 아빠도 그 소리 들으면 별로 안 좋아해요.”하고 너스레를 떨면 시어머니는“쳇, 그래도 지 남편이라고 더 잘 생겼다 이거지? 내가 볼 때는 아니다.”하시면서도 은근히 좋아 하셨습니다.
저와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건 명절 때마다 식구들끼리 모여서 하는‘고스톱’입니다. 시어머니와 저는 잘 치지도 못하면서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빠지지 않고 꼭 참여합니다.
그런데 아무 계산도 없이 마구 치니까, 정말 잘 치시는 아이들 고모부와 남편이 오히려 돈을 잃게 됩니다. 매번 따는 사람은 저와 시어머니죠.
이런 모습을 보고 시누이가 한마디 합니다.“나중에 둘이(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할 게 있어서 심심하진 않겠네...”그렇게 딴 돈을 시어머니께 용돈 겸해서 드리는 기분도 괜찮았습니다. 명절날 제사지낸 후에, 돌아가 일할 걱정까지 해주시며 아침만 먹고 나면 일찍 떠나라고 미리미리 음식도 싸 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며 빨리 가라고 채근하시던 시어머니.... 그런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도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더 부럽습니다. 저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이렇게 나이 들어 고부지간에 서로 의지하고 오붓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이 아름다운 동거는 어느 누가 봐도 감탄사가 나올 만큼 행복해 보입니다.‘두 분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마음속으로 빌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