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전제(前提)가 역경이다. 고난은 고초(苦楚)라고도 한다. 고난이란 말엔 두 가지 의미(意味)가 숨어 있다. 하나는 괴롭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렵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네 가지 괴로움을 말했다. 첫째는 만나고 싶으나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둘째는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하니 괴롭고 셋째는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롭고 넷째는 혈기가 너무 왕성해 주체할 수 없어 괴롭다고 했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苦海)라 한 것이다. 생사 모두 고(苦)를 벗어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생과 사는 괴로움 가운데 오가는 것이다. 숙명적(宿命的)으로 고를 안고 사는 것이다. 이 세상 고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사(世上事) 고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렵다는 것은 힘든다는 것이다. 시험 문제가 어려워서 힘드는 것이 아니라 살기가 어려워 힘드는 것이다. 경제적(經濟的)으로 쪼들려 생활해 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살기가 힘든다는 것이다. 인생살이가 고생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생은 나이 들어 하는 것보다 초년(初年)에 하는 게 낫다. 초년에 세파(世波)와 싸워 이겨야 성공할 수 있고 탄탄대로(坦坦大路)의 말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둥지에서 날갯짓을 열심히 해둬야 후일 둥지를 떠나 검푸른 창공(蒼空)을 마음대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년(初年) 고생은 천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젊어서 고생하는 것이 그만큼 값지다는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무슨 소릴 하는가? 고생을 한 번 해 보라. 고생이 뭐 좋다고 그런 말을 하는가? 고생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소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말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초년고생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생을 해봐야 그것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배고파 봐야 배고픈 설움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배 골아 봐야 세상(世上)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온실(溫室)에서 자란 화초는 외풍(外風)을 이길 수 없다. 과보호(過保護)했기 때문이다. 노지(露地)에서 자라면서 비바람을 맞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초뿐만 아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새는 날지를 못한다. 스스로 살아가지 못한다. 방사한 반달곰이 다시 인가(人家)를 찾는 이유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먹이사냥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고생하면서 배워야 한다. 그것도 초년에 그렇게 해야 한다. 초년에 한 체험이 평생(平生)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초년에 고생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쓴맛을 모른다.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물어린 빵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난(苦難)이 약이다. 고난을 고초로만 생각지 말고 약으로 승화(昇華)시켜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고난과 역경(逆境)은 이웃사촌이다. 고난의 전제(前提)가 역경이기 때문이다. 역경이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불운(不運)한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고생이 많은 불행(不幸)한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불운한 처지나 불행한 처지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말이다. 불운하니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색불유(不塞不流)란 말이 있다. 막혀야만 넘쳐흐를 수 있다는 말이다. 막힌 것만을 탓하지 말라는 말이다. 불운만을 탓하지 말라는 말이다. 불운을 행운(幸運)으로 뒤바꿀 수 있는 지혜(智慧)를 발휘하라는 말이다. 절처봉생(絶處逢生)이란 말도 있다. 절지(絶地)에서 생을 만난다는 말이다. 절지에서 살아난다는 말이다. 절처란 역경을 말하는 것이다. 역경을 나쁘게만 보지 말라는 말이다. 만월(滿月)보다 초생달에서 희망을 보라는 말이다. 고난과 역경에서 희망을 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