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뜨거운 태양아래 두 소녀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른 비포장 언덕길을 걸어 오르고 있습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선 연신 땀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숨은 턱에 차서 헉헉거리고 있는 모습이 꽤나 힘들어 보입니다. 그때 군부대의 짚차가 먼지를 날리며 달리다 멈추어 섭니다. 여학생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운전병이 내려와 차에 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너무 고마워하며 차에 올랐습니다. 차안에는 번쩍번쩍하는 별을 두 개나 달고 있는 군인 아저씨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소녀들을 맞아 주셨습니다. 그 아저씨의 모자와 어깨에 달린 별이 어찌나 번쩍이는지, 소녀들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습니다. 어디까지 가는지, 가는 곳까지 태워주신다고 친절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나도 이담에 크면 이 아저씨처럼 멋진 군인한테 시집가고 싶어’ 두 소녀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소회산에서 운천까지 돌아온 소녀들은 달리 보답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배낭 속의 옥수수를 꺼내어 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옥수수 몇 자루로 그 고마움을 대신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친구네 밭이 있는 외진 산골마을까지 걸어가서 옥수수를 따 가지고 돌아오던 길에 만난 아름다운 인연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옥수수가 더 맛이 있었습니다. 30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은 새벽일이 끝나자마자 밭으로 달려왔습니다. 시댁의 큰어머니께서 오래간만에 저희 집엘 다니러 오셨는데 오늘 떠나신답니다. 가시는 길에 옥수수를 따서 전해드리려고요. 새벽이슬을 머금은 옥수수 줄기는 너무나 싱싱합니다. 저는 제 키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란 줄기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알맞게 익은 옥수수를 골라 따냅니다. 옥수수는 수염을 보고 익은 것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옥수수가 처음 자랄 때는 수염이 엷은 베이지 색을 띠면서 자라고, 점차 알이 차기 시작하면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합니다. 알이 꽉 차고 먹기 좋게 여물면 수염의 색깔은 갈색을 띠면서 끝 부분이 살짝 마르게 됩니다. 이것을 골라 따내면 딱 먹기 좋게 여물어 맛이 좋은 옥수수가 되는 것이죠. 옥수수 수염이 갈색이라도 아직 마르지 않았거나, 너무 많이 말랐으면 알맹이가 덜 여물었거나, 너무 딱딱하게 여물어 먹지는 못하고 씨로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 밭 옥수수는 다른 옥수수보다 특별히 맛이 더 좋습니다. 흰 찰 옥수수에, 검은 찰 옥수수를 군데군데 섞어 심어놓았더니 옥수수 꽃이 필 무렵 서로 적당히 잘 섞여 너무 맛이 있는 옥수수가 된 것입니다. 흰 옥수수는 알이 굵고 크기가 큰 반면 찰진 맛이 덜하고, 검은 옥수수는 찰진 맛은 좋은데 알이 작고 크지 않은 단점이 있습니다. 이 둘을 적당히 섞어 심으면 꽃가루가 적당히 섞여 흰 알맹이에 검은 알맹이가 적당히 섞인 정말 맛있는 옥수수가 나옵니다. 크기도 크면서 적당히 찰진 점박이 옥수수가 바로 그것이죠. 따기 시작한지 채 30분도 안되어 벌써 한 자루를 가득 땄습니다. 차 트렁크 안에 옥수수를 넣어드렸더니 좋아하십니다. 큰어머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옥수수를 쪄 드셨는데 너무 맛이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슴 뿌듯한 보람이 느껴지네요. 제가 농사지은 옥수수를 가지고 이웃과 친척이 나누어 먹는 기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천상 농사꾼인가 봅니다. 농사꾼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돕고 자랐고, 결혼해 살면서도 친정부모와 함께 농사지으며 사는 것이 좋기만 합니다. 그것을 통해 나누고 또 받기도 하면서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죠. 오늘은 옥수수를 삶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렇게 올 여름은 옥수수 먹는 재미로 보내려고요. 이것이 사는 재미가 아닐 까요?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김미경 주부명예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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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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