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공기가 유난히 후덥지근합니다. 장마철 고온다습한 기후는 한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로 이어져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는 저 같은 사람도 더위와 싸우느라 곤욕을 치르죠. 이런 날은 몰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 엠피쓰리 음악을 일하는 내내 크게 틀어놓고 다닙니다. 엠피쓰리 이어폰을 오래 사용하면 난청이 된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운전 중에 몰려오는 잠을 쫓기 위한 전쟁이 저에겐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일하는 중간 중간 껌을 씹으며 음악에 맞춰 콧노래도 부르고 일을 하다 간혹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일과가 산정호수에 도착할 때쯤이면 거의 막바지에 이르는데 도로변 채소밭에서 일을 하시는 아저씨를 자주 만나 뵙게 됩니다. 친구의 아버지이고 선친과 친구이시며, 경주김씨 종친이 되시니 그럭저럭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할까요. 그러나 제가 한때 농협이사로 지내면서 농협운영에 대한 서로의 사고방식이 달라 법정을 오가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 분도 평범한 아저씨로, 저도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농협과의 모든 법적인 분쟁을 끝내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흔쾌히 친구인 이사, 감사를 설득하여 저와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덕분에 저는 그분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대장암 수술과 항암 치료 등 힘든 투병생활을 거쳐 건강을 되찾으시고, 농사지으며 살아가시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 올해 초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목이 메이기도 합니다. 항암치료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계시느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오지 못하셨다고 미안해하셨던 아저씨는 제가 지나다니는 길 옆 채소밭에서 일하시는 모습으로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저는 그런 아저씨를 만날 때 마다 아저씨가 세워둔 차 안에 신문을 넣어드리곤 했습니다. 오늘도 신문을 넣어 드리려고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저를 본 아저씨가 쫓아오셨습니다. 커다란 감자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서..... “감자 가져가.” 방금 캔, 제 주먹보다 훨씬 큰 감자는 흙이 채 마르지도 않아 아주 싱싱했습니다. “신문도 자주 드리지 못하는데 이렇게 많이 주시면 어떻게 해요?” “내가 신문 때문에 주는 줄 아니? 우리 사이가 그런 게 아니잖아?” 서너 관은 족히 되는 감자를 큰 비닐봉지에 담아서 주시는 아저씨께 저는 또 다시 미안해집니다. 잘 해드린 것도 없는데..... 집에 돌아와 감자를 볶아 먹으니 고소한 감자의 향내가 입안에 가득 퍼지는 것이 아저씨의 사랑만큼이나 정겹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무슨 일을 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일과를 마무리하고 늦은 저녁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감자가 또 있는 겁니다. 5관들이 커다란 포장용 규격박스에 들어있는 감자를 보고 저는 또 한번 의문에 빠져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일까? 누가 또 감자를 가져다 준 걸까?’ 그럴 만한 사람이 한 사람 떠올랐습니다. 농협에서 함께 대의원을 지내고, 함께 농협을 개혁해보자고 의기투합했던 분이 있었거든요. 한 동네에 살며 서로 농협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도 하고, 지금도 농민회에서 일을 하시며 획기적인 농사 방법등을 연구하고 홍보하기 위해 애를 쓰시는 분입니다. 저녁엔 너무 늦어 전화를 하지 못하고 다음날 그분께 전화하여 어제 감자를 가져다주신 게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파는 감자를 그냥 주시면 어떻게 해요? 돈을 받으셔야죠.” 그랬더니, “돈 받고 팔려고 했으면 갖다 주지도 않았어요.” 하시는 겁니다. 저는 또 한번 행복에 빠졌습니다. 세상이 부럽지 않네요. 제 주변에 저를 이렇게 생각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무엇이 부럽겠어요? 감자만 바라봐도 마음이 뿌듯해지고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은데 올 여름엔 감자빈대떡에 감자 수제비, 감자 튀김등 감자요리를 실컷 먹게 생겼어요. 전 정말 감자를 좋아하거든요. 누구 감자먹고 싶으신 분 있으시면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저의 이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김미경 주부명예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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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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