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三知)란 말이 있다. 삼지라? 무슨 말인지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삼지란 지족(知足)과 지분(知分)과 지지(知止)를 말하는 것이다. 족함을 알고 분수를 알고 그칠 줄 아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자신을 아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분수껏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 것이 바로?지지?이다.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멈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단전호흡을 할 때도 호(呼)나 흡(吸)보다 지(止)에 무게를 둔다. 멈출 때 신(神)이 열리고 멈출 때 각(覺)이 오기 때문이다. 숨을 멈추고 "무아(無我)의 경지(境地)"에 들어 보라. 정신이 맑아지고 깨우침이 오지 않는가? 바로 그것이다. 지(止)의 상태에서 명경지수(明鏡止水)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수(止水) 위에"계시(啓示)가 발현(發現)"되는 것이다. "아이디어(idea)"가 떠오르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생각해 보라. 아찔하지 않은가?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어야 하듯이 사람에게는 지지(知止)가 있어야 한다. 멈출 줄 아는 지혜(智慧)가 있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멈출 때 멈추지 않고 질주(疾走)하다가 낭패를 당했는가?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이다. 좀 나쁜 듯 할 때 수저를 놓아야 한다. 지나치면 탈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한 것이다. 지나침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나는 머리를 많이 썼다고 생각될 때 곧장 손을 놓고 걷는다.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무조건 걷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걷는다. 걷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유연(柔軟)해진다. 지지(知止)의 효과다. 머리만 멈추는 것이?지지?가 아니다. 생각을 멈추고 욕심(慾心)을 멈추어야 한다. 과욕(過慾)을 멈추고 사욕편정(邪慾偏情)을 멈추어야 한다. 아니 버려야 한다. 그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아야 한다. 물론 멈출 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것이 잘 안 될 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內面)을 돌아보고 자신의 능력(能力)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분수(分數)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을 알고 분수껏 살면 문제될 게 없다. 분수를 알면 "지지"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분수에 넘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수껏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분수를 지킨다는 것은 일한 만큼만 거두는 것이다. 땀 흘린 만큼만 거두는 것이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거두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탐해서는 안 된다. 다툼이 일기 때문이다. 싸움이 일기 때문이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니 다툼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분쟁(紛爭)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송사(訟事)도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분수를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분수의 경계(境界)를 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能力)과 성향(性向)을 알아야 한다. 수리(數理)에 밝은 사람은 수리에 집중해야 하고 추리(推理)에 밝은 사람은 추리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적성(適性)이라고 한다.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같은 장사라도 자기에게 맞는 업종(業種)이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남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업종"을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취향(趣向)"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 모든 일은 자신이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최선(最善)이다. 하고 싶으나 여건이 되지 않아 못하는 수도 있고 할 수 있으나 시들해져서 안 하는 수도 있다. 능력이 있을 때 일을 해야 하고 싶을 때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잘 안 되니 속을 끓이는 것이다. 그럴 때 지지(知止)를 떠올려야 한다. 일단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보는 것이다. 어떤가? 그 이치(理致)가 훤히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