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췌장암 말기선고를 받고 투병중이시라 많이 수척하고 야위어진 모습으로 친정아버지께서 찾아 오셨다. 수술도 못하고 항암치료조차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는데 한 동네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마음속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병원에 다니시면서 오히려 더 많이 상하신 당신을 보며, “드시고 싶으신 것 잘 드시고 운동을 자주 하시며 기분 좋은 일만 생각하시라”고 여러 차례 말씀드리고 가끔 갈비, 삼계탕 등 좋아하시는 음식을 챙겨 드렸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찾아오신 걸 보니 뭔가 특별한 일이 있으신가보다고 생각했다. “칼국수가 먹고 싶어...”하시며 친구 세 분이 투병중인 당신을 위해 외식도 시켜주시고 바람을 쐬도록 도와주신다는 말씀도 더불어 하셨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당신께서 드시고 싶으신 것보다는 당신 친구들에게 보답하고 싶으셨다는 것을... 그러나 눈치 없는 딸은 당신이 드시고 싶으신 줄만 알고 친정 식구와 우리 가족이 함께 외식하자고 약속을 했다. 약속 당일 아침부터 친정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오늘 점심에 어디로 가야하니?” “그냥 제 사무실로 오셔서 우리 식구들하고 같이 가시면 되잖아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그 양반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서 가면 되지 왜 너희 사무실로 번거롭게 가느냐고 얘기하는데 어떻게 하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분들이 누구예요?” 어머니는 아버지 친구 세 분 내외를 내가 함께 초청한 줄 알고 그렇게 초대를 한 것이었다.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한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 우리 식구하고 같이 외식하자고 했더니 무슨 얘기예요? 그런 일이면 진작 얘기를 해주셨어야지, 차도 교통사고로 수리하고 있어서 한 대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요?”하며 나는 역정을 내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분들이 차가 있으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리고 식사비가 부담되면 나도 좀 가지고 가면 되지.”하시길래 “그분들 여섯 분이라 봐야 칼국수 한 그릇에 몇 푼이나 한다고 그걸 엄마가 내세요? 걱정하지 말고 약속장소로 직접 나오실 수 있도록 연락해 주세요.” 약속장소에서 좀 기다리니 아버지 친구 두 분과 아주머니가 도착하셨다. 그 분들은 딸인 내가 이렇게 대접을 해드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었다. 겨우 칼국수 한 그릇인데.... 이미 식사를 하신 탓에 나오지 않으신 분도 있다고 하셔서 시내에서 더 맛있는 칼국수를 이번엔 내가 직접 대접해드리기로 하고 연락처를 받아왔다. 이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너무 기뻐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며 아까 내가 공연히 역정을 낸 것이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아버지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아들 셋 낳고 바라던 딸을 낳으셨다고 나를 항상 예뻐해 주셨다. 당시 미군부대에 근무하셨던 당신은 친구를 만나거나 볼 일 보러 다닐 때도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니시며 우리 딸 예쁘다고 내 자랑을 하셨다. 남들은 구경도 못하는 딸기아이스크림, 비스켓 등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구두에, 드레스까지 입고 공주처럼 자랐다. 그런 아버지께 이제 와 칼국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그렇게 가셨다. 췌장암 선고를 받으시고 일 년 만에 그렇게 가셨다. 그 힘든 항암치료를 위해 통원치료와 입원, 퇴원을 반복하시더니 중환자실에서 두 달을 지내시고 지난 구정에 돌아가셨다. 그동안 입원치료를 하시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 아버지와 친구 분들에게 지켜드리기로 한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못했는데 나에게 숙제를 하나 남겨주시고 가신 것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동안 자식노릇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아버지 친구 분들을 통해 자식노릇 할 기회를 주셔서 말이죠. 며칠 내로 그 분들과 함께 식사하며 아버지를 생각할 것이다. 이제 아버지 영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식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김미경 주부명예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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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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