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이야기

용경자 주부명예기자단 감사

아들 녀석은 유치원 다니느라 졸린 눈을 비비고 딸아이는 방학동안 늦잠 자던 습관 때문에 아침이면 비몽사몽이다.
어린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아이들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화사한 봄옷을 입었다가 감기에 걸려 혼이 나곤 했지만 지금은 그때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얇게 옷을 입고 다니는 딸아이를 혼내고 있는 실속파 엄마가 되어버렸다.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나는 그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나를 생각해본다.
호화로운 거대 평수의 아파트나 고급 승용차 또는 내 이름으로 된 땅 한 평도 없다. 굳이 가진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빚이 조금 있지만 능력이 있어서 은행에서 돈을 빌렸으니 그것도 나의 재산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누구나 그렇듯이 사랑스런 아들, 딸이 있다.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지만 내 눈에는 어린 아들이 글씨를 읽는 것을 보는 순간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도 해보고 딸이 커서 엄마가 피곤하고 힘들 때 밥도 해놓고 빨래도 널어주면서 엄마 어깨도 시원하게 주물러 주는 것을 보면 너무도 대견하다. 언뜻 나와 신랑의 버릇을 따라하고 꼭 닮은 생김새를 볼 때면 고려청자의 완성을 보는 듯 황홀하고 신통하기만 하다. 이런 행복을 주는 자식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할 텐데 자꾸 샘솟는 욕심을 뿌리칠 수 없으니 나도 별 수 없는 보통 엄마였다.
세 번째로 나는 포천의 맑고 신선한 공기의 주인이다. 서울에서 느끼지 못하는 맑은 공기는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요 집사다. 또한 건강과 생활의 활력소를 제공해주는 포천의 산천초목도 언제나 주인님을 기다리듯 나를 경건하게 맞이해 주니 나의 재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집이다. 서울의 삼청동에서 외롭게 성을 지키는 우아한 여왕이 되기보다는 생활비도 적게 들고 도선생이 호시탐탐 노리지도 않는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작은 평수의 임대 아파트가 참 좋다.
하지만 특별한 나만의 재산이 있으니 그것은 내 손과 발을 움직여서 돈을 벌 수 있는 건강한 나의 신체, 그리고 작은 공장과 언제 어디서나 인정받고 환영받는 신랑의 기술이 아닐까?  아침 일찍 거래처에 납품을 갔다가 그곳의 사모님이 차를 한 잔 건네면서 신랑에 대해 칭찬을 하신다. 나의 이익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배려해주는 점에 호감을 느꼈다고 하셨다. 순간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세상 모두를 가진 듯 뿌듯했다.
오늘 당장 로또가 당첨되어 긴 숫자의 돈이 내 통장에 입금된다 한들, 수 만평의 땅이 내 이름으로 기록된다한들 이 자신감의 원천인 신랑과 바꿀 수 없으리라. 
추운 겨울 빨간 내복을 입고서 장사를 나가신 엄마를 기다리던 소녀가 자라나서 엄마가 되었고 그때에 비하면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진 듯하다.
웃음으로 건강만 챙긴다면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면서 부자가 된 듯 뿌듯한 마음으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