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창종의 현대시 감상(32)

무에든지 왔으면-
미친 바람과 같이 휘몰려 다니는 이 마음을
다만 한시라도 진정하련만
미쳐 날뛰는 이 마음을 잊어버리련만

아무것도 오지 않느냐?
아 이 마음 사냥꾼의 창살에
배를 찔리운 이리와 같이
뛰며 부르짖으며 피를 흘리며

아아 무어든지 오렴
좋고 나쁘고 착하고 약함을 묻지 않고서
허무에 싸인 거칠은 들과 같은 이 마음의 위에로
몰리어 다니는 무서운 바람을 가라앉히겠다.

쌀쌀한 달밤
바람은 나무가지에 목을 매달고
지금 미쳐 날뛰는 거칠은 이 마음은
무엇이 오기를 그 무엇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린다.

◀감상=해설 김기진(金基鎭) 팔봉(八峰)의 시이다. 팔봉은 시인이라기 보다도 장편 소설가로 더 유명하다.
충남에서 1903년에 태어난 팔봉은 일본 입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시대일보 학예부 기자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 소설, 평론 등을 썼다. 소설 『청년 김옥균』 『해도음(海島音)』 『재출발』 『나는 살았다』 등의 저서가 있다.
경향신문 주필을 지냈는데 『삼국풍류』 『성군(星群)』 등 역사소설을 쓰기도 하였다. 50년대 일간신문에는 팔봉의 연재소설이 실려 인기를 누렸다.
6.25때는 북한 공산당에게 인민재판을 받아 죽음의 직전에 섰으나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나는 기적을 맛보기도 하였다.
팔봉은 영문학 전공자답게 『ENNUI』란 대표시를 쓰기도 하였다. 팔봉은 『고대하는 마음』에서 당시 유행하던 허무주의 사조를 자신의 고뇌 속에서 방황하며 몸부림치고 뒹굴며 노래하고 있다. 어느 시인은 교통사고나 지진을 기대하는 젊은이의 몸부림치는 방황과 고뇌를 노래했듯이 팔봉도 막연하나마 그 무엇이 찾아와서 허무하고도 방황하는 자신의 혼을 찌르고 부수고 피를 흘리게 하고 죽음의 고통을 느끼면서까지도 채워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팔봉도 이렇듯 고뇌에 찬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