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의 기온이 영하 18도인데 햇살은 어딘가 숨어서 온종일 구경도 못해보고 대신에 칼칼한 바람이 놀러 와서 사람들의 뺨과 귀를 빨갛게 얼리는 날이다.
나는 배달 일을 하는지라 차안에서 히터를 틀어 추위를 피하지만 온기 없는 큰 공장이나 바깥에서 일하는 분들은 온몸으로 추위를 받아내고 있으니 그들에게 겨울은 형벌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날에는 건강한 몸으로 따뜻한 마음을 서로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포천에서 송우리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사시사철 똑같은 복장을 하고서 포천에서 송우리로 난 4차선 도로변을 걸어 다니던 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 여름에 입고 다니던 구멍이 숭숭 뚫린 털 스웨터에 얇은 바지를 입고서 잔득 어깨를 오므린 채 여름의 그 모습 그대로 걷고 있었다."아니 저 아저씨가 오늘처럼 추운 날에도 저렇게 걸어 다니고 있나?"하면서 바라보노라니 유난히 추운 날씨가 신경이 쓰인다.
사람은 신체가 건강해야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가 수월하지만 신체의 결함이 있다하여도 정상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언론의 목표물이 된다. 그 이유는 정상인보다 뛰어난 불굴의 의지력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그보다도 나은 조건에서 나는 왜 못하나? 하는 자기반성을 유도하려는 언론의 뜻이리라. 결론적으로 사람은 정신이 건강하면 신체적인 부족함은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체는 멀쩡한데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우해야 할까? 신체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도움이나 보살핌을 받는 사회적 풍토가 형성되어 있지만 정신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그 방법을 묻는 것조차 아이러니 하다. 어른들은 사지가 멀쩡한데 왜 저러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면서 질책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지만 기름투성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맹목적으로 걸어 다니는 저 남자가 가진 것이 없어서 굶는 사람보다도 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내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내 주변에 정신적인 빈곤으로 고생하는 이웃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나누어주는 미래의 봉사자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신적인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사랑의 손길과 정신적 풍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21C 새로운 봉사자가 아닐까?
추운 이 겨울 누군가 맹목적으로 길을 걷기만 하는 저 남자에게 따뜻한 잠바와 함께 손을 내밀어 쉼터로 인도하려는 정성이 있다면 진정 테레사 수녀님의 후계자이리라.
내년 봄에도 이 도로를 계속 걷고 있으려나? 걱정과 소망이 교차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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